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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조전(雕篆)[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三)3 116 페이지 / 전적]
「雕篆」―雕蟲篆刻의 畧稱인데 詞賦의 末技를 말한 것임。宋史王李傳에 「이때에 학자들이 바야흐로 조전을 숭상하는데 홀로 고문 수십편을 만들어내니 동향의 노선배들이 보고서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 여겼다」(時學者方尙雕篆 獨爲古文數十篇 鄕
조전석전(朝奠夕奠[인여가(引轝歌) 7 페이지 / 전적]
조전(朝奠)은 장사에 앞서 이른 아침마다 영전에 지내는 제사 의식. 석전(夕奠)은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 가운데, 염습 때부터 장사 때까지 매일 저녁에 신위 앞에 제물을 올리는 의식.
조전석전(朝奠夕奠[인여가(引轝歌) 7 페이지 / 전적]
조전(朝奠)은 장사에 앞서 이른 아침마다 영전에 지내는 제사 의식. 석전(夕奠)은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 가운데, 염습 때부터 장사 때까지 매일 저녁에 신위 앞에 제물을 올리는 의식.
조전석전(朝奠夕奠[인여가(引轝歌) 7 페이지 / 전적]
조전(朝奠)은 장사에 앞서 이른 아침마다 영전에 지내는 제사 의식. 석전(夕奠)은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 가운데, 염습 때부터 장사 때까지 매일 저녁에 신위 앞에 제물을 올리는 의식.
조정[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四)4 83 페이지 / 전적]
「巖廊」-殿廡를 이름. 漢書에『虞舜之時 遊于巖廊之上 垂拱無爲 而天下平』이라 하였음.
조정(調整)[자책가(가) 16 페이지 / 전적]
어떤 기준이나 실정에 맞도록 조절하거나 고르게 하는 것.
조정(調鼎)[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149 페이지 / 전적]
「調鼎鼐」― 鼐는 大鼐임. 예로부터 宰相이 天下를 治理하고 百事를 揆度하는 것으로써 鼎의 調味와 같다하여 비유를 하였음. 魏野가 冠準에게 준 詩에 「有官居鼎鼐 無地起樓臺 」의 句가 보임.
조정암[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06 페이지 / 전적]
조광조.
조정암(趙靜庵)[한흥가라 58 페이지 / 전적]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음. 개혁정치 단행으로 훈구파와 맞서다, 기묘사화 때 능주로 유배되어 사사됨.
조정암(趙靜庵)[한흥가라 58 페이지 / 전적]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음. 개혁정치 단행으로 훈구파와 맞서다, 기묘사화 때 능주로 유배되어 사사됨.
조정암(趙靜庵)[한흥가라 58 페이지 / 전적]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음. 개혁정치 단행으로 훈구파와 맞서다, 기묘사화 때 능주로 유배되어 사사됨.
조정암(趙靜菴)[한양가라 57 페이지 / 전적]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말한다. 김종직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영수로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다가 훈구파 남곤 일파가 일으킨 기묘사화 때에 죽임을 당하였다.
조조(曹操)[역대가라(역가라) 8 페이지 / 전적]
후한(後漢) 말기의 무장. 황건적을 물리치고 화북(華北)을 통일하여 위왕(魏王)이라 일컬었다. 그가 적벽대전에서 유비(劉備)·손권(孫權)의 군대에 패하여 중국이 셋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조조(曹操)[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74 페이지 / 전적]
삼국 시대 위나라의 시조(155~220)로 황건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동탁(董卓)을 벤 후 실권을 장악하였음. 208년에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하여 중국이 삼분된 후 216년에 위왕(魏王)이 되었음.
조조(曹操)[몽유가(몽류가) 4 페이지 / 전적]
삼국 시대 위나라의 시조(始祖)(155~220). 자는 맹덕(孟德). 황건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동탁(董卓)을 벤 후 실권을 장악하였음. 208년에 적벽(赤壁) 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하여 중국이 삼분된 후 216년에 위왕(魏王)이 되었음. 권모에 능하고 시문을 잘하였음.
조조(曹操)[메물가 7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中國) 후한(後漢) 말기(末期)의 무장(武將). 자는 맹덕(孟德). 황건(黃巾)의 난(亂)을 다스려 군공(軍功)을 세웠으며, 군웅(群雄)을 물리치고 화북(華北)을 거의 통일(統一)하여, 위왕(魏王)이라 일컬었음. 적벽 대전(大戰)에서 유비(劉備)ㆍ손권(孫權)의 연합군(聯合軍)에 패하여, 중국(中國)은 셋으로 나뉘었는 데, 그 아들 조비(曹丕)가 한(漢)나라에 대신(代身)하여 위(魏)나라를 세우는 기틀을 닦았음. 무제(武帝)
조조(曹操)[몽유가(몽류가) 4 페이지 / 전적]
삼국 시대 위나라의 시조(始祖)(155~220). 자는 맹덕(孟德). 황건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동탁(董卓)을 벤 후 실권을 장악하였음. 208년에 적벽(赤壁) 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하여 중국이 삼분된 후 216년에 위왕(魏王)이 되었음. 권모에 능하고 시문을 잘하였음.
조조(曹操)[메물가 7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中國) 후한(後漢) 말기(末期)의 무장(武將). 자는 맹덕(孟德). 황건(黃巾)의 난(亂)을 다스려 군공(軍功)을 세웠으며, 군웅(群雄)을 물리치고 화북(華北)을 거의 통일(統一)하여, 위왕(魏王)이라 일컬었음. 적벽 대전(大戰)에서 유비(劉備)ㆍ손권(孫權)의 연합군(聯合軍)에 패하여, 중국(中國)은 셋으로 나뉘었는 데, 그 아들 조비(曹丕)가 한(漢)나라에 대신(代身)하여 위(魏)나라를 세우는 기틀을 닦았음. 무제(武帝)
조조(曹操)[한양가라 77 페이지 / 전적]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조(始祖)로 황건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동탁(董卓)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208년에 적벽대전(赤壁大戰) 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했다.
조조(曹操)[자치가라 21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후한(後漢) 말의 승상으로 황건(黃巾)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우고, 여포(呂布)와 원소(袁紹) 등을 차례로 격파하고 화북(華北)지역을 통일하여 천하 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