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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손이도로 되단말가[형제붕우소회가라 10 페이지 / 두루마리]
손님이 다시 되었다는 말인가.
손익(損益)[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一)1 91 페이지 / 전적]
「損益三友」- 論語 李氏篇의 『益者三友 損子三友』에 나온 말임.
손입수(巽入首) 사좌원(巳坐原)[국사옥룡자유세비록(國師玉龍子遊世秘錄) 7 페이지 / 전적]
손방(巽方.동과 남 사이)으로 입수(入首)하여 사좌해향(巳坐亥向)의 방향을 잡음.
손자(損者)가 삼우(三友) 있으니[교우가(交友歌) 4 페이지 / 전적]
손자삼우(損者三友). 사귀면 손해가 되는 세 가지 친구로서, 무슨 일에나 안이한 길만을 취하는 사람, 남에게 아첨하는 사람, 입에 발린 말 뿐이고 성의가 없는 사람.
손자삼우(損者三友)[명륜가(明倫歌) 98 페이지 / 전적]
사귀어서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세 유형의 벗. 곧 겉치레만 잘 하는 벗, 아첨하는 벗, 말만 번드레한 벗.
손자삼우(損者三友)[시절가 17 페이지 / 전적]
사귀면 손해를 보는 세 가지 해로운 벗. 편벽한 사람, 착하기는 하나 줏대가 없는 사람, 말만 잘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 논어에 나오는 말.
손재(損財)[경노의심곡 7 페이지 / 두루마리]
재물을 잃어버림.
손재(損財)[망부가 13 페이지 / 전적]
재물을 잃어버림.
손저구(孫杵臼) 문경지우(刎頸之友)[ 1 페이지 / ]
중국 춘추시대 진(晉)의 태원(太原) 사람인 공손저구(公孫杵臼). ‘저구(杵臼)’는원래 절굿공이와 절구통을 말하는데, 빈천(貧賤)을 가리지 않고 사귀는 것, 또는 고용인이 서로 갖는 사귐을 ‘저구지교(杵臼之交)’라 함. 벗을 위해서라면 목이 잘려도 한이 없을 만큼 친밀한 사이.
손저구(孫杵臼) 문경지우(刎頸之友)[장연변씨세적(長淵邉氏世蹟) 93 페이지 / 전적]
중국 춘추시대 진(晉)의 태원(太原) 사람인 공손저구(公孫杵臼). ‘저구(杵臼)’는원래 절굿공이와 절구통을 말하는데, 빈천(貧賤)을 가리지 않고 사귀는 것, 또는 고용인이 서로 갖는 사귐을 ‘저구지교(杵臼之交)’라 함. 벗을 위해서라면 목이 잘려도 한이 없을 만큼 친밀한 사이.
손저구(孫杵臼)[자경별곡 16 페이지 / 전적]
중국 춘추시대 진(晉)의 태원(太原) 사람인 공손저구(公孫杵臼). ‘저구(杵臼)’는 원래 절굿공이와 절구통을 말하는데, 빈천(貧賤)을 가리지 않고 사귀는 것, 또는 고용인이 서로 갖는 사귐을 ‘杵臼之交’라 함. 문경지우(刎頸之友). 벗을 위해서라면 목이 잘려도 한이 없을 만큼 친밀한 사이.
손저구(孫杵臼)[권학가 1 페이지 / 전적]
중국 춘추시대 진(晉)의 태원(太原) 사람인 공손저구(公孫杵臼). ‘저구(杵臼)’는 원래 절굿공이와 절구통을 말하는데, 빈천(貧賤)을 가리지 않고 사귀는 것, 또는 고용인이 서로 갖는 사귐을 ‘杵臼之交’라 함. 문경지우(刎頸之友). 벗을 위해서라면 목이 잘려도 한이 없을 만큼 친밀한 사이.
손저구(孫杵臼), 문경지우(刎頸之交)[삼강오륜자경곡(三綱五倫自警曲) 26 페이지 / 전적]
중국 춘추시대 진(晉)의 태원(太原) 사람인 공손저구(公孫杵臼). ‘저구(杵臼)’는 원래 절굿공이와 절구통을 말하는데, 빈천(貧賤)을 가리지 않고 사귀는 것, 또는 고용인이 서로 갖는 사귐을 ‘杵臼之交’라 함, 문경지우(刎頸之友). 벗을 위해서라면 목이 잘려도 한이 없을 만큼 친밀한 사이.
손정(孫靜)[녁대가(녁가) 48 페이지 / 전적]
중국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유대(幼臺). 삼국시대 오나라의 시조인 손견의 동생으로 형을 도와 후방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음. 손견이 사망하고 조카인 손책이 주군으로 등극하자 회계군 공략의 선봉장으로 역할하였음.
손죽도[팔역가(八域歌) 35 페이지 / 전적]
전남 여천군 삼산면에 위치한 섬
손책(孫策)[녁대가(녁가) 51 페이지 / 전적]
중국 후한(後漢) 말의 무장(175~200). 손견 사후 군대를 이어받아 강남을 평정, 진무와 개발에 힘썼음.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한나라 헌제를 맞으려 했으나 실행에 옮기기 전에 자객의 칼을 맞고 죽었음.
손탑(孫榻)[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75 페이지 / 전적]
「孫榻」―晋書孫康傳에「孫康이 少時에 淸介하여 交遊도 함부로 하지를 않는데 家貧하여 燈油가 없어서 일찌기 눈에 글자를 비쳐 글을 읽었다」라 하였음.
손톱 여물을 썰면서[노졍긔 18 페이지 / 전적]
속담. ‘손톱 여물을 썰다’. 앞니로 손톱을 씹는다는 뜻으로, 곤란한 일을 당하여 혼자서만 애를 태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
손톱 여물을 썰면서[노졍긔 18 페이지 / 전적]
속담. ‘손톱 여물을 썰다’. 앞니로 손톱을 씹는다는 뜻으로, 곤란한 일을 당하여 혼자서만 애를 태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
손하절(巽下絶)[지리산이수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팔괘 중 손괘(巽卦)의 상형인 ☴의 일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