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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신정(新正)[소년애절가 6 페이지 / 두루마리]
새해 정월(正月). 새해의 첫 머리. 양력(陽曆) 설.
신정(新正)을 미흡(未洽)하고[자탄가 1 페이지 / 두루마리]
양력 1월 1일을 제대로 지내지도 못하고.
신정(神貞)[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8 페이지 / 전적]
조선 순조의 세자인 익종의 비(妃)(1808~1890). 순조 19년(1819)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834년에 왕대비가 되었고 광무 3년(1899)에 익왕후(翼王后)로 추존되었다.
신정석(新鼎席)[심심가(尋心歌) 59 페이지 / 전적]
새로운 삼정승.
신정석(新鼎席)[심심가(尋心歌) 59 페이지 / 전적]
새로운 삼정승.
신정전[한양가라 7 페이지 / 전적]
사정전(思政殿)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
신정전(申政殿)[한흥가라 9 페이지 / 전적]
왕의 집무를 위한 공간이지만 성종 때는 공혜왕후(恭惠王后)가 이곳에서 양로연(養老宴, 조선의 80세 이상 모인 모두를 초청하는 행사)을 엶으로써 왕비가 사용한 전례를 남기기도 함.
신정전(申政殿)[한흥가라 9 페이지 / 전적]
왕의 집무를 위한 공간이지만 성종 때는 공혜왕후(恭惠王后)가 이곳에서 양로연(養老宴, 조선의 80세 이상 모인 모두를 초청하는 행사)을 엶으로써 왕비가 사용한 전례를 남기기도 함.
신정전(申政殿)[한흥가라 9 페이지 / 전적]
왕의 집무를 위한 공간이지만 성종 때는 공혜왕후(恭惠王后)가 이곳에서 양로연(養老宴, 조선의 80세 이상 모인 모두를 초청하는 행사)을 엶으로써 왕비가 사용한 전례를 남기기도 함.
신정희(申正熙)[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5 페이지 / 전적]
조선 고종 때의 장군(1833~1895). 자는 중원(中元). 호는 향농(香農). 어영대장, 독판내무부사를 거쳐 통위사를 지냈다. 편서(編書)에 ≪훈련도감중기(訓練都監重記)≫가 있다.
신졍이[상사곡이라 4 페이지 / 두루마리]
신정(身情)이. 몸과 마음이.
신조(晨朝)[북쳔가 15 페이지 / 두루마리]
오전 여섯 시에서 열 시 사이의 시간.
신종(愼終)[통륜가(通倫歌) 12 페이지 / 전적]
상사(喪事)를 당하여 예절을 중시함.
신종(神宗)[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0 페이지 / 전적]
중국 명(明)의 제14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로서 ‘만력중흥(萬曆中興)’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발전을 가져옴. 후에 친정(親政)을 하면서 황제의 역할과 정무(政務)를 내팽개치는 ‘태정(怠政)’을 하여 명(明)의 정치적 혼란을 가져와 멸망으로 이끔.
신종(神宗)[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0 페이지 / 전적]
중국 명(明)의 제14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로서 ‘만력중흥(萬曆中興)’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발전을 가져옴. 후에 친정(親政)을 하면서 황제의 역할과 정무(政務)를 내팽개치는 ‘태정(怠政)’을 하여 명(明)의 정치적 혼란을 가져와 멸망으로 이끔.
신종(神宗)[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10 페이지 / 전적]
중국 명(明)의 제14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로서 ‘만력중흥(萬曆中興)’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발전을 가져옴. 후에 친정(親政)을 하면서 황제의 역할과 정무(政務)를 내팽개치는 ‘태정(怠政)’을 하여 명(明)의 정치적 혼란을 가져와 멸망으로 이끔.
신종(神宗)[대명복수가(명복수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명(明)의 제14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로서 ‘만력중흥(萬曆中興)’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발전을 가져옴. 후에 친정(親政)을 하면서 황제의 역할과 정무(政務)를 내팽개치는 ‘태정(怠政)’을 하여 명(明)의 정치적 혼란을 가져와 멸망으로 이끔.
신종(神宗)[대명복수가(명복수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명(明)의 제14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로서 ‘만력중흥(萬曆中興)’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발전을 가져옴. 후에 친정(親政)을 하면서 황제의 역할과 정무(政務)를 내팽개치는 ‘태정(怠政)’을 하여 명(明)의 정치적 혼란을 가져와 멸망으로 이끔.
신종(神宗)[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3 페이지 / 전적]
중국 북송의 제6대 황제(1048~1085)로 성은 조(趙). 이름은 욱(頊)이다. 왕안석의 신법을 채용하고, 제도·교육·과학 따위의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내정 파탄과 외정의 실패, 구법당(舊法黨)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재위 기간은 1067~1085년이다.
신종(神宗)[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6 페이지 / 전적]
고려 제20대 왕(1144~1204)으로 이름은 탁(晫), 초명은 민(旼)이다. 자는 지화(至華). 최충헌이 옹립하였던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97~1204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