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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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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더[ 1 페이지 / ]

솟아 떠서.

소손녕(蕭遜寧)[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0 페이지 / 전적]

거란의 장군(?~?)으로 고려 성종 12년(993)에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입하였으나, 서희와의 담판에서 굴복하여 강동 육주를 고려에 넘겨주고 물러났다.

소솔이[사절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작중 화자가 사는 마을 이름인 듯함

소쇄(掃灑)[권왕가 10 페이지 / 전적]

비로 쓸고 물을 뿌리는 것.

소쇄(掃灑)[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9 페이지 / 전적]

비로 쓸고 물을 뿌리는 것.

소쇄(掃灑)[셩경가 8 페이지 / 전적]

비로 먼지를 쓸고 물을 뿌리다.

소쇄(掃灑)[셩경가 8 페이지 / 전적]

비로 먼지를 쓸고 물을 뿌리다.

소쇄(瀟洒)[초당춘수곡 4 페이지 / 전적]

인품이 맑아 속기(俗氣)가 없음.

소쇄瀟洒[ 1 페이지 / ]

맑고 깨끗함, 인품이 훌륭함.

소쇄瀟灑[ 1 페이지 / ]

어떤 지경에 도는 기운이 맑고 깨끗함

소쇄정(瀟灑亭)[석천집(石川集二-五)2-5 118 페이지 / 전적]

중종 때의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담양의 남면 지곡리(芝谷里)의 향리에서 경영하였던 소쇄원(瀟灑園)에 있는 정자의 이름.

소쇄정瀟灑亭[ 1 페이지 / ]

대봉대 위에 초가로 세워진 작은 정자. 소정小亭 또는 초정草亭이라고도 한다. [瀟灑園事實]에 실려 전하는 [瀟灑園圖]에 의하면 작은 초정이 그려져 있고, 그 곁에 ‘小亭‘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복원되어 있는 소쇄원의 이 정자에는 ‘待鳳臺‘라는 현판이 있으나 이는 ‘소쇄정‘이라고 고쳐 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봉대‘는 초정 아리의 축대를 말하는 것으로 소쇄정과는 별개이다. 가까이의 대나무와 오동나무가 있는 곳을 신선이 사는 영지로 지칭하기 위해 붙여진 축대 이름이 대봉대이다(김인후, 송순, 임억령 등의 소쇄정 제영 및 [소쇄원도]참조)

소수 少睡[ 1 페이지 / ]

잠깐 졸다.

소수(消愁)[대동가(동가) 13 페이지 / 두루마리]

시름을 없애 버림.

소수림왕(小獸林王)[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22 페이지 / 전적]

고구려의 제17대 왕(?~384). 이름은 구부(丘夫). 해미유왕(解味留王)이라고도 한다. 동왕 2년(372)에 중국 전진에서 순도가 불상과 경문(經文)을 가져오자 이를 받아들여 최초로 불교를 수입하였다.

소수서원(紹修書院)[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1 페이지 / 전적]

태백산(太白山) 백운동(白雲洞)에 있던 서원. 조선왕조 중종(中宗) 38년(1543)에 풍기(豐基)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명종(明宗) 5년(1550)에 소수(紹修)라 사액(賜額)한 것인데, 고려조 안유(安裕)를 배향(配享)하였음. 고종(高宗)초에 폐함.

소슬[고분가 21 페이지 / 전적]

소슬하다, 으스스하고 쓸쓸하다.

소슬[고분가 21 페이지 / 전적]

소슬하다, 으스스하고 쓸쓸하다.

소슬(蕭瑟)[상사진정몽가(相思陳情夢歌) 3 페이지 / 전적]

바람이 으스스하고 서늘한 상태에 있음.

소슬(蕭瑟)[우미인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으스스하고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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