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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석결명[석천집(石川集二-二)2-2 41 페이지 / 전적]
전복의 다른 이름인데, 복어(鰒魚)라고도 한다.
석경(夕景)[화조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저녁 햇빛의 그늘. 저녁때의 경치.
석경(石徑)[초당춘수곡 5 페이지 / 전적]
돌이 많은 좁은 길.
석경(石徑)[나웅하상토굴가 1 페이지 / 두루마리]
돌이 많은 좁은 길을 말하며 석경(石逕)으로도 쓰임.
석경(石徑)[화조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돌이 많은 좁은 길.
석경石逕[ 1 페이지 / ]
돌이 많은 좁은 길, 또는 산길
석계(石溪) 선생[육십회갑가사 2 페이지 / 두루마리]
이시명(李時明 1590(선조 23)∼1674(현종 15)).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회숙(晦叔), 호는 석계(石溪). 병자호란 이후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은거하면서 후진양성에 주력하였다. 시문에 능하고 초서도 잘 썼으며, 특히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어 이학(理學)에 밝았다. 저서로는 「석계집」 6권이 있다.
석계(石階)[셔유곡 10 페이지 / 전적]
섬돌(집채의 앞뒤에 오르내릴 수 있게 놓은 돌층계).
석고(石皷)[송강집(松江集三)3 28 페이지 / 전적]
주선왕(周宣王)의 업적을 칭송하여 돌에 새긴 것으로 중국(中國)의 각석(刻石), 문자로는 가장 오랜 것이며 모양이 북과 비슷하다.
석고(石鼓)[석천집(石川集二-三)2-3 20 페이지 / 전적]
주(周)의 선왕(宣王)이 기양(岐陽)에서 사냥을 마친 뒤 그 공적을 북 모양의 돌에 새긴 것. 글은 주(周)의 대전(大篆)으로 새겨졌는데 사주(史籒)의 작으로 전하며, 협서성(陜西省) 보계현(寶雞縣)에 있었던 것을 당대(唐代)에 발견되어 정여경(鄭余慶)이 봉상(鳳翔)의 공자묘(孔子廟)안으로 옮겼음.
석고대죄[백세보중(百世葆重 三)3 5 페이지 / 전적]
거적을 깔고 엎드려서 자신의 죄 값 치루기를 기다림.
석고대죄(席藁待罪)[백세보중(百世葆重 二-一)2-1 38 페이지 / 전적]
거적을 깔고 엎드려서 처벌을 기다린다는 뜻. 대개 대궐이나 의금부(義禁府)의 문 밖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석권(席捲)[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33 페이지 / 전적]
굉장한 기세(氣勢)로 영토(領土)를 남김없이 차지하여 세력(勢力) 범위(範圍)를 넓히는 것.
석권천(席捲天)[막소가(莫笑歌) 13 페이지 / 전적]
거침없는 기세로 하늘을 휩쓴다.
석기(夕起[월기달노래라(월기달노라) 7 페이지 / 두루마리]
저녁이 되어.
석기(夕起[월기달노래라(월기달노라) 7 페이지 / 두루마리]
저녁이 되어.
석년(昔年)[금강산유람가 6 페이지 / 두루마리]
옛날.
석단石壇[ 1 페이지 / ]
돌로 쌓은 축대 위의 집
석담(石潭)[송강집(松江集六)6 23 페이지 / 전적]
이율곡(李栗谷)
석대(石黛)[ 1 페이지 / ]
눈썹을 그리는 안료顔料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