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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조변석개(朝變夕改)[효행가(효가) 4 페이지 / 두루마리]
아침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뜻으로 계획이나 결정 등을 일관성이 없이 자주 고침을 이르는 말.
조병갑(趙秉甲)[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58 페이지 / 전적]
조선 고종 때의 탐관. 고종 29년(1892) 고부 군수로 부임하여 만석보(萬石洑)를 증축하면서 임금을 주지 않았으며, 부친의 비각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강제로 징수하는 따위의 온갖 폭정을 자행하였다. 그의 폭정은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조병세(趙秉世)[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62 페이지 / 전적]
조선 고종 때의 문신ㆍ순국열사(1827~1905). 자는 치현(穉顯). 호는 산재(山齋). 고종 26년(1889)에 우의정이 되었고, 갑오개혁 이후 은거하였다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를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결하였다.
조병옥(趙炳玉)[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78 페이지 / 전적]
<인명> 독립운동가ㆍ정치가(1894~1960). 호는 유석(維石). 초명은 병갑(炳甲). 광주 학생 항일 운동과 수양 동지회(修養同志會) 사건 따위로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한국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공천을 받았으나 신병으로 미국에서 치료를 받다가 병사하였다.
조보(趙普)[원유가 8 페이지 / 전적]
송나라의 건국 공신.
조보(趙普)[녁대가(녁가) 60 페이지 / 전적]
중국 송(宋) 나라의 건국 공신. 처음에는 학문이 어두웠으나 송나라 태조(太祖)의 권고를 받은 뒤부터는 그의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고 함.
조복(朝服)[조심가라 15 페이지 / 전적]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 붉은빛의 비단으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깃이 곧음.
조복(朝服)[조심가라 15 페이지 / 전적]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 붉은빛의 비단으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깃이 곧음.
조복(朝服)[한흥가라 25 페이지 / 전적]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 붉은빛의 비단으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깃이 곧다
조복(朝服)[한흥가라 25 페이지 / 전적]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 붉은빛의 비단으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깃이 곧다
조복(朝服)[한흥가라 25 페이지 / 전적]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 붉은빛의 비단으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깃이 곧다
조복(朝服)[한양가라 23 페이지 / 전적]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에 입던 예복.
조복(朝服)[사군가(事君歌) 4 페이지 / 전적]
조정(朝廷)에 나아갈 때 입는 의복(衣服), 붉은빛의 비단(緋緞)으로 지음.
조복(粗服)[효열전니라(孝烈傳니라) 13 페이지 / 전적]
거칠고 값싼 의복.
조봉암(曺奉巖)[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74 페이지 / 전적]
정치가(1898~1959). 호는 죽산(竹山). 1919년 3ㆍ1 운동에 참가하여 복역하였고, 1925년 조선 공산당에 참여하였으나 광복 후 공산당을 탈당하였다. 1952년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낙선하였으며, 1956년 진보당을 창당하고 정치 활동을 벌이다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사형되었다.
조부(調府)[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6 페이지 / 전적]
신라 때에, 공부(貢賦)를 맡은 관아. 진평왕 6년(584)에 설치하여 경덕왕 때 대부(大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다시 이것으로 고쳤다.
조부(造父)[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二)2 156 페이지 / 전적]
造父」― 人名인데 御馬를 잘하여 周穆王에게 괴임을 받았다. 王은 造父로 하여금 御를 잡게하여 西으로 巡狩하며 樂에 겨워 돌아올 줄을 모르는데 그 사이 徐偃王이 배반하자, 王은 連日 千里馬를 달리어 徐偃王을 쳐서 크게 부수고 마침내 造父에게 趙城을 賜하니 이로 말미암아 趙氏가 되었다.
조부모(祖父母)[외손별곡 3 페이지 / 두루마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
조불반석(朝不反夕)[추월감 9 페이지 / 두루마리]
조불려석(朝不慮夕)과 같은 말로 형세가 절박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당장을 걱정할 뿐이고 앞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음을 이르는 말.
조불여석(朝不慮夕) : 조불모석(朝不謀夕)[복션화음록 9 페이지 / 전적]
형세가 급박하여 아침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아침 식사는 했지만 저녁 끼니는 걱정을 해야 한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