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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전하(殿下)[경술가 6 페이지 / 전적]
조선 제 22대 군주 정조(正祖)를 이름.
전하(殿下)[한양가라 12 페이지 / 전적]
왕이나 왕족을 높여 부르는 말.
전한(典翰)[효열전니라(孝烈傳니라) 22 페이지 / 전적]
홍문관에 속한 종삼품 벼슬
전행(前行)[북쳔가 10 페이지 / 두루마리]
앞으로 나아감.
전행(專行)[지효가(知孝歌) 10 페이지 / 전적]
오로지 혼자서 결단하여 행함.
전행(專行)[효행가(孝行歌) 2 페이지 / 전적]
오로지 혼자서 결단하여 행함.
전행(轉行)[북쳔가 22 페이지 / 두루마리]
방향을 바꾸어 옮겨감.
전향(羶薌)[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26 페이지 / 전적]
「羶薌」― 馨香을 이름. 羶은 馨이 되어야 마땅하니 聲의 誤임.禮記祭義에 「二端旣立 報以二禮 建設朝事 燔燎羶薌 見以蕭光以報氣也 此敎衆反始也」라 하였음.
전향(轉向)[팔도가 13 페이지 / 전적]
방향을 바꿈.
전향(轉向)[팔도가 13 페이지 / 전적]
방향을 바꿈.
전혀[츄풍간별곡 차(츄풍간별곡 ) 5 페이지 / 전적]
오로지.
전형(典刑)[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七)7 106 페이지 / 전적]
詩經 大雅에 「雖無老成人 尙有典刑」이란 句가 있는데 箋에 「오히려 常事와 古法이 남아 있어 ∝用할만 하다는 말이다」하였음. 後漢書 孔融傳에 『蔡邕과 더불어 오래 좋아하였는데 邕이 죽은 뒤에 虎賁士의 容貌가 邕과 비슷한 자가 있어, 融은 매양 술이 얼근하면 끌어들여 자리를 같이하며 말하기를 「雖無]老成人 且有典刑」』이라 하였음. 그래서 後人이 遺範의 뜻으로 引用하는데 역시 典型이라도 씀.
전형을 요량치못[형제붕우소회가라 9 페이지 / 두루마리]
전현(前賢)을 요량(料量)못해 정도의 뜻인 듯하다. 예전의 현인들을 짐작할 수가 없어서
전횡(專橫)[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07 페이지 / 전적]
권세(權勢)를 오로지 하여 제 마음대로 함.
전횡(田横)[한흥가라 51 페이지 / 전적]
중국 진(秦) 말기의 인물로서 형인 전담(田儋), 전영(田榮)과 함께 진(秦)에 반기를 들고 제(齊)를 다시 일으켰다. 한(漢)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평정하자 빈객(賓客) 5백여 명과 섬에 숨어 살다가, 유방의 부름을 받고 뤄양[洛陽]으로 가던 중에 자결하였다.
전횡(田横)[한흥가라 51 페이지 / 전적]
중국 진(秦) 말기의 인물로서 형인 전담(田儋), 전영(田榮)과 함께 진(秦)에 반기를 들고 제(齊)를 다시 일으켰다. 한(漢)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평정하자 빈객(賓客) 5백여 명과 섬에 숨어 살다가, 유방의 부름을 받고 뤄양[洛陽]으로 가던 중에 자결하였다.
전횡(田横)[한흥가라 51 페이지 / 전적]
중국 진(秦) 말기의 인물로서 형인 전담(田儋), 전영(田榮)과 함께 진(秦)에 반기를 들고 제(齊)를 다시 일으켰다. 한(漢)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평정하자 빈객(賓客) 5백여 명과 섬에 숨어 살다가, 유방의 부름을 받고 뤄양[洛陽]으로 가던 중에 자결하였다.
전횡(田橫)[한양가라 50 페이지 / 전적]
중국 제(齊秦)나라 전영(田榮)의 아우로 한신(韓信)에게 쫓기자 자신을 따르던 부하 오백여 명과 섬으로 피하였다. 그러나 힘이 부족하여 유방(劉邦)의 신하되기를 거부하고 자살했는데, 그의 부하 오백여 명도 같이 자살하고 말았다.
전효도(傳孝道)[계녀사라 5 페이지 / 전적]
전해 내려온 효도.
전효자(全孝子)[효자가 12 페이지 / 전적]
전우창이 전씨 성을 가진, 온전한 효자임을 말하는 중의적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