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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이소(離騷)[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79 페이지 / 전적]
「離騷」-椘 屈原이 放逐을 당하여 離騷를 지었으므로 여기는 被謫의 뜻으로 쓴 것임。
이소(離騷)[잣치가라(치라) 35 페이지 / 전적]
초나라 굴원이 지은 부(賦) 작품.
이소(離騷)[녁대가(녁가) 35 페이지 / 전적]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부(賦). 조정에서 쫓겨난 후의 시름을 노래한 것으로 『초사』 가운데에서 으뜸으로 꼽힘.
이소로[화전가 5 페이지 / 두루마리]
‘이렇게‘와 같은 뜻으로 썼다
이소성대(以小成大)[운청가 6 페이지 / 두루마리]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큰 일을 이룸.
이소양(李昭陽)[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73 페이지 / 전적]
이양소를 이르는 것. 이양소는 고려말의 충신으로 자는 여건(汝健), 호는 금은(琴隱), 정몽주의 문인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사예를 거쳐 군수를 지냈다. 고려말 이방원과 함께 곡산(谷山) 청룡사(靑龍寺)에서 공부하고, 성균관에도 같이 있었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여러 차례 벼슬을 주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소을 어이듯고[형제붕우소회가라 3 페이지 / 두루마리]
이 소리를 어찌 듣고.
이수(二竪)[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五)5 161 페이지 / 전적]
「二竪」―病魔와 같은 말임. 「左傳成公十年」『公이 꿈을 꾸니 疾이 두 竪子가 되어 하는 말이「彼는 良醫이니 우리를 상할까 두렵다. 어디로 도피해야 하느냐」하자 그 하나는「肓의 위와 膏의 아래에 있으니 제가 우리를 어찌할게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醫가와 보고서「이병은 어찌할 수 없으니 肓의 위와 膏의 아래에 있어 처낼 수도 없고 미처가게 해도 미치지 못한다」라 하였음. 後人이 病을 들어 二竪라 稱함이 이에 근본된 것임.
이수일[명륜가(明倫歌) 67 페이지 / 전적]
조중환의 신소설인
이수중분(二水中分) 백로주(白鷺洲)[죽엽가(쥭엽가) 6 페이지 / 전적]
이수(二水)의 중간 갈림길에 있는 것은 백로주(白鷺洲)라.
이순신(李舜臣)[한흥가라 65 페이지 / 전적]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명장. 옥포대첩, 사천포해전, 당포해전, 1차 당항포해전,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명량대첩, 노량해전 등에서 승리했다.
이순신(李舜臣)[한흥가라 65 페이지 / 전적]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명장. 옥포대첩, 사천포해전, 당포해전, 1차 당항포해전,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명량대첩, 노량해전 등에서 승리했다.
이순신(李舜臣)[한흥가라 65 페이지 / 전적]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명장. 옥포대첩, 사천포해전, 당포해전, 1차 당항포해전,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명량대첩, 노량해전 등에서 승리했다.
이순신(李舜臣)[한양가라 64 페이지 / 전적]
조선 선조 때의 무신(1545-1598)이다. 32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어 거북선을 제작하는 등 군비 확충에 힘썼다. 임진왜란 때 한산도에서 적선 70여 척을 무찌르는 등 공을 세워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이순신(李舜臣)[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3 페이지 / 전적]
조선 선조 때의 무신(1545~1598).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32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어 거북선을 제작하는 등 군비 확충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산도에서 적선 70여 척을 무찌르는 등 공을 세워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노량 해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저서에 ≪난중일기≫가 있다.
이숭인(李崇仁)[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69 페이지 / 전적]
고려말기의 학자(1349~1392)로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이다.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공민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제학을 거쳐 동지춘추관사를 지냈으나 만년에는 친원파와 친명파의 모함을 받아 여러 차례 옥사(獄事)를 겪었다. 정몽주와 함께
이슥토록[한양가라 68 페이지 / 전적]
밤깊도록.
이슬아침[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7 페이지 / 전적]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
이슬아침[자탄가 10 페이지 / 두루마리]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
이승[어와따님요(어와님요) 7 페이지 / 전적]
지금 살고 있는 ‘일생’, 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