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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이민위천(以民爲天)[국명열록(國名列錄) 2 페이지 / 전적]
백성을 하늘같이 여김. 즉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음.
이민위천(以民爲天)[고간지(古干支) 2 페이지 / 전적]
백성을 하늘같이 여김. 즉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음.
이민위천(以民爲天)[민탄가(民歎歌) 2 페이지 / 전적]
백성을 하늘같이 여김. 즉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음.
이민후생(利民厚生)[명륜가(明倫歌) 47 페이지 / 전적]
백성을 이롭게 하고 생활을 넉넉하게 함.
이바지[자직가(子職歌) 4 페이지 / 전적]
① 잔치의 방언(강원).② 힘들여 음식 같은 것을 보내 줌.또는 그 음식.
이발(李潑)[백세보중(百世葆重 一)1 50 페이지 / 전적]
1544(중종 39)~1592(선조 22). 선조대 동인의 거두로 정철과 대립하였고, 정철의 처벌문제에 대해서는 강경론을 주도하였다. 1589년의 기축옥사(己丑獄事: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사건)가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그의 형제인 이길(李洁)․이급(李汲) 등 모두가 처형당하였다
이발(李潑)[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3 페이지 / 전적]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44~1589).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菴)ㆍ북산(北山). 1573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선조 16년 부제학을 역임하고, 이듬해 대사간에 이르렀다. 북인(北人)의 수령이 되어 왕도 정치를 제창하였으나, 정여립의 모반 사건에 연좌되어 장살(杖殺)되었다.
이발(李潑, 중종 39, 1544~선조 22, 1589)[문청공유사 사계수필(文淸公遺事 沙溪手筆) 7 페이지 / 전적]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菴). 제학 중호(仲虎)의 아들. 선조 1년(1568) 생원이 되고 1573년 알성문과에 장원하여 이조정랑 응교 전한 대사간을 역임했다. 조광조의 지치주의를 이념으로 왕도정치를 제창하여 기강확립에 힘썼으나, 동인의 거두로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장살되었다.
이방(吏房)[심심가(尋心歌) 16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각 지방 관아에 속한 육방(六房) 가운데 인사 관계의 실무를 맡아보던 부서.
이방(吏房)[심심가(尋心歌) 16 페이지 / 전적]
조선 시대에, 각 지방 관아에 속한 육방(六房) 가운데 인사 관계의 실무를 맡아보던 부서.
이방실(李芳實)[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63 페이지 / 전적]
고려 말기의 무신(?~1362)이다. 함안 이씨의 시조로 충목왕이 원나라에 내왕할 때 호종한 공으로 중랑장(中郞將), 호군(護軍)에 올랐다. 여러 차례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 내어 왕의 신임을 독차지하다가 이를 시기한 간신 김용(金鏞)의 모략으로 피살되었다.
이방원(李芳遠)[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70 페이지 / 전적]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의 본명.
이배(移拜)[효열전니라(孝烈傳니라) 24 페이지 / 전적]
전근 명령을 받음.
이배(移拜)[아림가(娥林歌) 37 페이지 / 전적]
벼슬아치가 전근 명령을 받음
이백[석천집(石川集二-四)2-4 104 페이지 / 전적]
中國 盛唐時代의 代表的인 詩人.
이백(李白)[권학가 4 페이지 / 전적]
중국 당(唐)나라의 시인(701-762).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또는 주선옹(酒仙翁). 시성(詩聖) 두보(杜甫)에 대하여 시선(詩仙)이라 일컬어지고, 두 시인을 함께 이두(李杜)라고도 칭하였음
이백(李白)[화전가1 5 페이지 / 전적]
성당(盛唐)때의 대시인(大詩人),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靑蓮), 두보(杜甫)와 함께 시종(詩宗)으로 존앙 받음.
이백(李白)[화전가2 6 페이지 / 전적]
성당(盛唐)때의 대시인(大詩人),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靑蓮), 두보(杜甫)와 함께 시종(詩宗)으로 존앙 받음.
이백(李白)[옥셜화답 8 페이지 / 전적]
중국 당나라 시인(701~762)으로,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림.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함.
이백(李白)[견월가 2 페이지 / 두루마리]
중국 당나라의 시인(701-762). 자(字)는 태백(太白). 호(號)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젊어서 여러 나라에 만유(漫遊)하고, 뒤에 출사(出仕)하였으나 안사의 난으로 유배되는 등 불우한 만년을 보냈다. 칠언 절구에 특히 뛰어났으며, 이별과 자연을 제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현종과 양귀비의 모란연(牧丹宴)에서 취중에 <청평조(淸平調)> 3수를 지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에 대하여 시선(詩仙)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