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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덕[화전가1 14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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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덕[화전가2 14 페이지 /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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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명(金佑明)[한양가권지해라(한양가권지라) 28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619~1675). 현종의 장인으로 청풍부원군에 봉하여졌고, 영돈령부사가 되었다. 송시열과 서인에 속하였으나 나중에 사이가 벌어져 한당(漢黨)의 중진이 되었다.

김유((金瑬)[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3 페이지 / 전적]

조선 인조 때의 문신(1571~1648).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인조반정 때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영의정으로서 최명길 등과 더불어 화의를 주장하여 왕이 항복하게 하였다. 시문에 뛰어났다.

김윤후(金允侯)[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8 페이지 / 전적]

고려 고종 때의 승장(僧將)(?~?)으로 백현원(白峴院)에서 수도하다가, 고종 19년(1232) 몽고가 침입했을 때에 몽고 제국의 장군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김응남(金應南)[백세보중(百世葆重 四)4 64 페이지 / 전적]

호는 두암 또는 자암 자는 중숙 원주인으로 선조 때 문과.

김응서(金應瑞)[한흥가라 96 페이지 / 전적]

김경서(金景瑞, 1564~1624)의 초명(初名).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 김해. 자 성보(聖甫). 시호 양의(襄毅). 임진왜란 때 평양 방위전에서 대동강을 건너려는 적을 막고 명나라 이여송의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했다.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 위하여 원병요청을 하자 출전했고 금나라 군대에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적정을 기록하여 고국에 보내려다 처형되었다.

김응서(金應瑞)[한양가라 94 페이지 / 전적]

조선 선조 때 무신(1564-1624)으로 임진왜란 때 많은 무공을 세우고, 포도대장, 북로 방어사 등을 지냈다.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을 치기 위하여 출정하였다가 강홍립이 항복할 때 함께 포로가 되었으나, 적정(敵情)을 기록하여 조선에 보내려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김응서(金應瑞, 1564-1624)[팔도안희가 4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평양 방위전에서 대동강을 건너려는 적을 막고 명나라 이여송의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했다.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 위하여 원병요청을 하자 출전했고 금나라 군대에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적정을 기록하여 고국에 보내려다 처형되었다.

김응하(金應河)[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29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무신(1580~1619). 자는 경의(景義). 삼수 군수ㆍ북우후(北虞侯) 등을 지냈으며, 광해군 11년(1619)에 명나라의 원병 요청으로 만주의 건주위(建州衛)를 치러 출정하였다가 전사하였다.

김이정(金而精)[송강집(松江集三)3 78 페이지 / 전적]

김취려(金就礪)의 자(字)이며 퇴계 문인(退溪門)임.

김익주(金益主)[복션화음록 3 페이지 / 전적]

가공의 인물로 규방가사에 흔히 나오는 이름이다.

김인문(金仁問)[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25 페이지 / 전적]

신라의 장군ㆍ외교관(629~694). 자는 인수(仁壽).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인문(金仁問)[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34 페이지 / 전적]

신라의 장군ㆍ외교관(629~694). 자는 인수(仁壽).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인문(金仁問)[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7 페이지 / 전적]

신라의 장군·외교관(629~694)으로 자는 인수(仁壽)이다.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인준(金仁俊)[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59 페이지 / 전적]

김준(金俊), 고려 시대의 무신(?~1268)으로 초명은 인준(仁俊)이다. 고종 45년(1258)에 최의(崔竩)를 살해함으로써 최씨의 무단 정치를 타도하고 왕권을 회복하였다.

김인후[팔역가(八域歌) 38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 도학자

김인후(金麟厚)[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11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ㆍ유학자(1510~1560).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ㆍ담재(湛齋). 중종 35년(1540)에 문과에 급제하고, 설서ㆍ부수찬을 거쳐 옥과 현령을 지냈으나,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저서에 ≪하서집≫,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등이 있다.

김인후(金麟厚 중종 5, 1510~명종 15, 1560)[문청공유사 사계수필(文淸公遺事 沙溪手筆) 4 페이지 / 전적]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김안국의 제자로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과 같이 학문을 닦고 중종 35년(1540)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 부수찬 등을 지냈다. 을사사화 후에는 병을 이유로 고향 장성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했다. 성경(誠敬)의 실천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으며 이기일물설(理氣一物說)을 주장했다.

김일경(金一鏡)[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141 페이지 / 전적]

조선 중기의 문신(1662~1724). 자는 인감(人鑑). 호는 아계(丫溪). 소론(少論)의 과격파로서 노론(老論)을 탄압하는 데 앞장서서 신임사화를 일으켜 노론 사대신(老論四大臣)을 극형에 처하고 이조 판서에 올랐으나, 영조가 즉위한 뒤 참형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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