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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풀이
계모(繼母)[간양되소가 4 페이지 / 두루마리]
의붓어머니.
계모(繼母)[간양되소가 4 페이지 / 두루마리]
의붓어머니.
계모(繼母)[외손별곡 3 페이지 / 두루마리]
의붓어머니.
계모슬하(繼母膝下)[환무자탄가 3 페이지 / 전적]
계모의 보살핌을 받음.
계묘[츄억감 14 페이지 / 두루마리]
1963년.
계묘년(癸卯年) 윤사월(閏四月) 초삼일(初三日)[우밈가 5 페이지 / 두루마리]
양력 1963년 5월 25일임
계문(啓聞)[옥산가라 33 페이지 / 전적]
계품(조선 시대에, 신하가 글로 임금에게 아뢰던 일).
계문(誡文)[백세보중(百世葆重 二-一)2-1 33 페이지 / 전적]
이 글은 앞 뒤 글과 아무런 연관 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런저런 문서를 필사하면서 들어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뒤에 향사(向事)가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계문연수(薊門烟樹)[연행별곡(연별곡) 19 페이지 / 전적]
계문에 아지랑이와 안개가 덮인 숲.북경 8경의 하나.
계미년[자탄가 1 페이지 / 두루마리]
서기 1943년.
계미년[육십회갑가사 4 페이지 / 두루마리]
1943년.
계미년(1583)의 소초(疏草)와 신묘년(1591)의 공사(供辭)를 부기 한다[백세보중(百世葆重 一)1 3 페이지 / 전적]
백세보중(百世葆重) 권 1의 내용은 대체로 송강 정철이 전라감사로 재직하던 때에 전라도를 두루 돌아보고 파악한 여러 문제들을 올린 상소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첨부했다고 하는 ‘계미년(1583)의 소초(疏草)’는 이른 바 ‘계미삼찬(癸未三竄) 사건’때에 올린 상소이고, ‘신묘년(1591)의 공사(供辭)’는 이른바 ‘건저의(建儲議)사건 때의 진술서’를 말한다
계미년(癸未年)[자탄가 3 페이지 / 두루마리]
서기 1943년.
계미삼찬사건(癸未三竄)[백세보중(百世葆重 一)1 43 페이지 / 전적]
1583년(계미년, 선조 16)에 동인 계열의 박근원(朴謹元)․송응개(宋應漑)․허봉(許篈) 등 세 사람이 이이(李珥)를 몰아내려다 모두 유배된 사건. 이이는 동서분당 후 점차 서인계로 기울었는데, 그가 병조판서로 재임 시 몇 가지 독자적인 시책을 편 일이 있었다. 이에 대사간 송응개 등이 이이가 병권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기는 간신이라고 비난하는 소를 올렸는데, 이에 조정 대신과 지방 유생들이 서로 파를 갈라 상대편을 비난, 배척하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결국, 죄를 밝혀 시비를 정하자는 서인 정철(鄭澈)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이들을 평안도와 함경도로 귀양 보내었다.
계방(癸方)[호남비결(湖南秘訣) 14 페이지 / 전적]
이십사방위의 하나.정북(正北)에서 동(東)으로 15도 방위를 중심으로 한 15도 각도 안의 방향.
계방산(癸方山)[일행마상가(一行馬上歌) 25 페이지 / 전적]
정북에서 동쪽으로 15도 방향에 있는 산.
계백(階伯)[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33 페이지 / 전적]
백제 말기의 장군(?~660). 의자왕 20년(660)에 나당(羅唐) 연합군이 백제로 쳐들어오자, 결사대 오천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 장수 김유신과 네 차례 싸운 끝에 전사하였다.
계백(階伯)[반만년한국가사(半萬年韓國歌史) 43 페이지 / 전적]
백제 말기의 장군(?~660)으로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로 쳐들어오자, 결사대 오천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 장수 김유신과 네 차례 싸운 끝에 전사하였다.
계법(戒法)[권왕가 51 페이지 / 전적]
부처가 제정한 율법.
계부(季婦)[계녀사라 8 페이지 / 전적]
집안의 맏며느리를 제외한 다른 며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