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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자료
미암일기에 대한 음성 설명 약 28초 소요
<민농가>는 조선조 말 석촌(石村) 정해정(鄭海鼎 : 1850〜1923이 <석촌별곡>을 제작한 같은 해의 동짓달에 이룬 가사다. 주로 3ㆍ4조와 4ㆍ4조를 혼용해서 총 110구로 구성한 비교적 장편의 노래로서 가사문학이 이미 쇠퇴해 가던 조선조 말에 이 같은 장편가사가 출현하였다는 것은 크게 주목된다.
<백발가>는 조선 후기 추담(秋潭) 남석하(南碩夏 : 1773~1853)가 제작한 총 222구의 장편가사이다. 작품의 중간에 한시는 물론 달거리 형식을 취하는 등 그 구성에 시가장르의 혼합을 보이고 있음이 주목된다. 역대 훌륭한 인물들이 모두 백발을 이겨내지 못하고 북망산으로 돌아갔음을 아쉬워하며, 인생이 늙어지면 미인이나 맛있는 음식 등도 모두 허사이므로 늙기 전에 삶을 허송하지 말 것을 권유한 내용의 노래이다.
조선 시대 중기 정철(鄭澈:1536~1593)이 지은 가사작품이다. 내용은 본의 아니게 임과 이별한 한 여인의 입장을 빌어 우시연군(憂時戀君)의 뜻을 노래한 것으로, 작자가 당쟁으로 인해 일시 조정에서 밀려나당시의 전라도 창평(昌平)의 송강정(松江亭 :지금의 담양군고서면 원강리 소재)에와 머물면서 지었다.3.4조위주의 음수율에 63행 126구로 짜여져 있다.
〈사미인곡(思美人曲)〉은조선시대후기곤파(崑坡)유도관(柳道貫:1741~1813)이 지은 가사 작품이다. 유도관의「곤파유고(崑坡遺稿)」초간본에 게재되어 정하는 이가사는 정철의〈사미인곡〉과〈속미인곡〉,김춘택의〈별사미인곡〉,이진유의〈속사미인곡〉과 같은 계열의 사미인곡류의 충신연주지사이다. 그러나 이는 종전의 사미인곡류와 달리 벼슬아치가 유배지에서 임금을 그리워 하는 작품이 아니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초야에 묻히어사는 한 선비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연군의정이 더 소박하고 순수하다.
조선 시대 중기 정철(鄭澈:1536~1593)이 지은 가사작품이다. 내용은 본의 아니게 임과 이별한 한 여인의 입장을 빌어 우시연군(憂時戀君)의 뜻을 노래한 것으로, 작자가 당쟁으로 인해 일시 조정에서 밀려나당시의 전라도 창평(昌平)의 송강정(松江亭 :지금의 담양군고서면 원강리 소재)에와 머물면서 지었다.3.4조위주의 음수율에 63행 126구로 짜여져 있다.
추담(秋潭) 남석하(南碩夏:1773~1853)는 앞에 둔 <초당춘수곡>과 <백발가>를 비롯하여 <사친가>와 <원유가> 등 4편의 가사를 제작한 이름난 시가시인이다. 그중 <사친가>는 총162구의 구성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내용으로 하였다.
〈석촌별곡〉은 조선조 말 석촌(石村) 정해정(鄭海鼎:1850~1923)이 재작한 가사다. 3ㆍ4조 위주로 된 총282구에 이르는 장편에 노래로서 가사문학이 이미 쇠퇴해 가던 조선조 말에 이 같은 장편가사가 출현하였다느 것은크게 주목된다. 송강 정철의 10대손인 석촌이 선조의 노래를 좋아한 나머지 그영향을받아 이러한작시를 이루게 되었는데, 여기서는 특히 정철의〈성산별곡〉내용에서 보는 작풍을 짙게 느낄 수 있다.
조선 시대 중기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 지은가사 작품이다. 그의제목에나오는 "성산"은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인 서하당(棲霞堂)과 식영정(息影亭)이 위치한 곳의 지명으로, 지금의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속한다. 내용은 성산의 아름다운자연에 묻혀 사는"서하당 식영정 주인"의 고아한 산중사시 생활을 찬미한 것으로, 강호 은일 가사의 성격을 지니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