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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가사라(답가라)
작자 :
미상
구분 :
두루마리
집정보 :
답가사라(답가라)
<답가사라>라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을 담은 여성가사이다. 한지 두루마리에 연속된 줄글형태로 필사되어 있다. 난독에 가까운 필체라 낱말을 정확하게 살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는 후일 좀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작자는 미상이며, 필사시기 작품 말미에 元月이라 한 것으로 보아 어느 해 정월이라 추정한다. 현재 한국가사문학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사친가(思親歌)>류와 비슷하며, 내용과 구성 등을 살펴볼 때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 필사자가 ‘등서’했다는 것으로 보아 다른 작품을 보고 옮겨적은 것으로 보인다. 작품 내용은 시집간 딸이 혼례를 올렸을 당시를 생각하면서 혼례과정을 치러야 부모님의 처지를 생각하며 노래하고 있다. 혼례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흘러 그때 일을 생각하니 부모님의 은혜가 새삼스럽게 높고 깊음을 인식하고 있다. 비교적 4음보의 율격을 지키고 있는 정격가사이며, 규방가사로 분류할 수 있다.
답긔슈가
작자 :
미상
구분 :
전적
집정보 :
기수가1
<답기수가>는 <기수가> 연작에 해당되는 노래로 화전가류의 규방가사이다. 정확한 창작시기와 작자는 알 수 없으나 작품 중간에 나오는 ‘한현선생의 후예’라는 구절을 통해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후손이 창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노래는 시누이들이 지은 <기수가>에 대한 답가로 올케가 지은 것이다. <기수가>에서 시매(媤妹)들에 의해 조롱을 당했던 올케는 그에 대한 반론과 시매(媤妹)들에 대한 훈계를 노래로 풀어놓는다. 먼저 화자는 자신의 집안이 교남(嶠南)의 명족(名族)이요 국내(國內)의 대반(大班)이라며 시댁 못지않게 대단한 가문임을 밝힌다. 그리고는 시누이들의 부덕함을 비난하였으며 어른 공경과 자손 훈계, 치산과 방적, 법도에 맞는 행동거지 등에 대해 논하였다. 올케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면 시누이로서의 책무에 힘쓰라는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또한 교남의 명족인 자신의 집에 비해 보잘것없는 시누이들의 가문을 비웃었다. 대부분 경제적인 부를 기반으로 하거나, 한미한 벼슬, 몰락한 처지에 있어 보잘 것 없는 양반이라며 <기수가>에서 시누이들이 자신을 무시한 것과 똑같이 조롱하고 있다.
답사향곡(답향곡)
작자 :
미상
구분 :
전적
집정보 :
사향곡
출가한 시누이가 친정을 그리워하며 편지로 <사향곡(思鄕曲)>을 지어 보냈으므로 그 회답의 형식으로 쓴 가사 작품이다. <사향곡>의 내용 중에 편지를 받는 시누이가 광산 김씨 벌열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의 작자는 광산 김씨 부인임을 알 수 있다. <사향곡>에서 시누이가 친정집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에 대하여 너무 친정 걱정을 하지 말라는 충고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답산가(踏山歌)
작자 :
미상
구분 :
전적
집정보 :
답산가3
양택과 음택이 자리한 곳의 풍수를 통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견한 풍수지리가사이다. 즉 그 내용은 갖가지 좌향(坐向)의 간룡(看龍), 장풍(藏風), 득수(得水), 정혈(定穴) 등을 통해 그곳에 터를 잡은 사람의 당대와 후대의 길함과 흉함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작자와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3·4조와 4·4조를 혼용하였으며, 4음보 1행 단위 190행으로 이루어져 있다.여기에 옮긴 대본은 한지에 귀글체로 필사되어 있는데, 맨 앞에 <답산가>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전체 8장으로 되어 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 내용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뒷부분이 일부 낙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답선유가라(답션뉴가리)
작자 :
미상
구분 :
전적
집정보 :
후여가라
<답선유가라>는 전적형태의 필사본으로 기행의 성격을 띤 규방가사이다. 줄글형태로 필사되어 있으며, 모두 17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표지에 <후여가라>라 쓰여 있는데, 이는 ‘훈여(訓女)’, 곧 여성을 훈계한다는 뜻으로 <춘유륙>, <선유가라>, <옥단춘전이라> 등 여러 작품이 함께 실려 있다. 현재 한국가사문학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작품은 여성의 신세 한탄으로 시작한다. 여성의 사회적 제약 탓에 활동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현실을 남자와 비교하고 있다. 봄날의 경치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작품 제목에서 ‘선유(仙遊)’는 경치 좋은 것을 구경하는 것으로, 이를 ‘답(踏)’하여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욕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구체적인 기행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봄날의 흥취를 옛고사를 인용하여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추상적 경험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봄날의 경치를 즐기지 못하고 문헌으로만 전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간접적 경험을 즐길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한계를 적절히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당산조션가
작자 :
미상
구분 :
전적
집정보 :
행실녹(실녹)
󰡔실녹󰡕이라는 표제(表題)와 함께 ‘갑술년 춘삼월 용궁면 무티실 이씨(李氏宅)’이라는 필사본의 표지에 작자와 필사(筆寫) 시기에 대한 단서가 제공되고 있으며, <어와 따님요>의 말미에 “갑술 삼월초”라는 제작 년대와 실제의 작자로 보이는 “이만의”와 “이소재”라는 인명이 나타나고 있다. 필사본 󰡔행실록󰡕에는 <당산조선가>, <어와따님요>, <갑진녹이라>, <우미인가라> 등 4편의 가사가 실려있는데, <당산조선가>와 <어와따님요>는 그 시대의 여식(女息)으로서 갖추어야 할 행실과 덕목을 노래한 규방가사이다. <갑진록이라>는 임진왜란 이후 13년째인 갑진년(1604)에 사명당(四溟堂)이 일본에 건너가 왜왕을 항복시키고 임진년의 원수를 갚고 돌아왔다는 내용의 우국가사로 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우미인가라>는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가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과의 해하성(垓下城) 전투에서 패하고 사면초가의 막다른 상황에 이르러 그가 사랑했던 연인 우미인(虞美人)과 이별하는 내용을 노래한 여성가사이다. <당산조선가>는 남녀가 유별했던 시대에 특히 결혼한 이후 친가(親家) 방문이나 벗들과의 만남이 자유롭지 못했던 여인들의 입장을 한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갑술년(甲戌年) 정월(正月) 이 소망을 이루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어와따님요> 역시 전반부에서는 여자의 본분을 충분히 익힌 다음 시집가서는 시부모 봉양 및 효우현심을 잘하여 며느리로서의 소임을 다하라는 친정어머니의 당부에 이어 후반부에서는 갑술년 정월 모처럼 친가를 방문하여 여러 친지 가족들과의 소풍 및 윷놀이로 회포를 푸는데 이어 다시 시댁에 돌아가서는 남의 칭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어머니의 각별한 당부로 끝을 맺고 있다. <갑진록이라>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서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운 사명당(四溟堂)의 이야기를 그려놓은 것인데, 특히 그가 임진왜란 이후 13년째인 갑진년(1604)에 일본 사신으로 건너가 왜왕의 항복을 받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우미인가라>는 무인년(戊寅年)에 지어진 작품으로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가 해하성(垓下城) 전투에서 한(漢)의 유방(劉邦)에게 패하고 난 다음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는 동시에 사랑했던 우미인(虞美人)과 이별하는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대동가(동가)
작자 :
미상
구분 :
두루마리
집정보 :
대동가(동가)
「대동가(大同歌)」는 가정의 사건을 중심으로 가족의 삶과 아녀자의 자세를 노래한 가사이다. 이 작품은 두루마리에 세로로 필사되어 있으며 한 줄에는 6∼8자의 한글로 기록되어 총 336행 2596자의 본사와 6행 48자의 부기(附記)로 구성되어 있다. 작자는 부기에 “석도믄 손부언 몽즁여 익다소 을묘십월 염일 일업난 람은 초노나”라고 하여 손부인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또한 손부인은 “부향구 득달니 각국람 모와드니 영도 란다 초량정 포를셔 장갓탄 저타니 경성천리 먼먼길을 츈식간 당도”라는 서울까지 병원을 가는 노정으로 보아 부산 근역에 사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창작시기는 을묘년으로 본문의 ‘영미법덕(英美法德)’ 등의 표현으로 보아 1915년으로 볼 수 있다. 문투는 한문투를 바탕으로 한글투를 적절하게 섞었다. 내용은 여자로 태어나 곱게 자란 후에 천생배필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부녀지도(婦女之道)를 실천하는 모습을 그렸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데, 무신년에 남편이 병을 얻어 서울에 가고 신해년에는 딸아이가 병을 얻어 영결하고 병진년에는 시어머니 회갑으로 잔치를 벌이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잘 처리하여 대동하는 모습을 그렸다. 부기에 “비파곡 기록니 몽듕 으여 강이만 불너보”라고 하여 이 가사는 비파곡의 곡조를 바탕으로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작자 :
조우각
구분 :
전적
집정보 :
대명복수가(大明復讎歌)
<대명복수가>는 1824년(순조 24) 창헌(蒼軒) 조우각(趙宇慤)이 지은 가사로 홍재휴(洪在烋) 소장본, 김광순(金光淳) 소장본, 안영창(安永昌) 소장본 등의 이본이 있다. 홍재휴 소장본과 김광순 소장본은 표제가 『동음(東音)』으로 되어 있다. 안영창 소장본에는 작자를 영천(永川) 조진사(趙進士) 우관(宇寬)으로 밝히고 있으나 우관은 필사 과정의 오류로 보인다. <대명복수가>는 영천(永川)을 중심으로 경북 일원에 전하여 애송되던 가사로, 특히 영천 지방의 고로(古老)들이나 부녀자들은 이를 암송하는 이도 있음을 보아 창헌(蒼軒) 조우각(趙友慤)의 유작 중에 가장 널리 전송된 장편가사라 하겠다. 이 작품은 청나라를 쳐서 명나라의 복수를 하겠다는 이상을 읊은 작품으로 내용은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하여 멸망된 것을 슬퍼하며,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우리가 당한 치욕을 설욕하지 못한 것을 통탄하였다. 명의 멸망을 비탄하고, 호란(胡亂)이 끼친 민족적 치욕을 설욕치 못하는 유분과 통한을 격렬한 어사로 도도히 엮어가며 구화신을 통격하고 중국과 동국 일대의 충의열사를 모두어 명나라 황실을 회복하고 병자년의 성하맹을 설치해 보자는 것이다. 또한, 강화를 주장한 최명길(崔鳴吉) 등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중국과 우리 나라 역대의 충의열사들을 모두 동원하여 청나라를 쳐부수는 쾌재를 노래한 작품이다. 그러나 회고적이고 보수적인 사대부 작자의 의식이 그대로 표현되어 그 문학적 형상화에서는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임진록>과 같이 전쟁으로 입은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와 당시 팽배하였던 북벌의지를 배경으로 창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으나, 두 차례의 호란이 있은 다음 근 200년 뒤에 지어진 것을 감안할 때, 이전에 비하여 급속도로 진행되는 사회변화의 요인을 명나라의 멸망에서 찾고, 그 회복을 바라는 데서 지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대명복수가(명복수가)
작자 :
미상
구분 :
두루마리
집정보 :
대명복수가(명복수가)
<대명복수가>는 1824년(순조 24) 창헌(蒼軒) 조우각(趙宇慤)이 지은 가사로 홍재휴(洪在烋) 소장본, 김광순(金光淳) 소장본, 안영창(安永昌) 소장본 등의 이본이 있다. 본 작품이 저본으로 삼은 것은 한국가사문학관 소장본이다. 한지 두루마리에 연속된 줄글형태로 필사되어 있으며, 앞에 결락된 부분이 많다. 작자는 미상이며, 필사시기 또한 미상이다. <대명복수가>는 영천(永川)을 중심으로 경북 일원에 전하여 애송되던 가사로서, 특히 영천 지방의 고로(古老)들이나 부녀자들은 이를 암송하는 이도 있음을 보아 창헌(蒼軒) 조우각(趙友慤)의 유작 중에 가장 널리 전송된 장편가사라 하겠다. 이 작품은 청나라를 쳐서 명나라의 복수를 하겠다는 이상을 읊은 작품으로 내용은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하여 멸망된 것을 슬퍼하며,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우리가 당한 치욕을 설욕하지 못한 것을 통탄하였다. 명의 멸망을 비탄하고, 호란(胡亂)이 끼친 민족적 치욕을 설욕치 못하는 유분과 통한을 격렬한 어사로 도도히 엮어가며 구화신을 통격하고 중국과 동국 일대의 충의열사를 모두어 명나라 황실을 회복하고 병자년의 성하맹을 설치해 보자는 것이다. 또한, 강화를 주장한 최명길(崔鳴吉) 등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중국과 우리 나라 역대의 충의열사들을 모두 동원하여 청나라를 쳐부수는 쾌재를 노래한 작품이다.
대비훈민가
작자 :
미상
구분 :
전적
집정보 :
대비훈민가
" 대비훈민가는 순국문으로 된 가사작품으로 자료형태는 『대비훈민가』라는 필사본에 계여가와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규격은 15.5*19cm로 박순호씨가 소장하고 있다가 2004년 12월 2일부터 한국가사문학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에 제작된 필사본 가사 작품으로 전승 경로가 다른 2종의 이본이 전한다. 하나는 경북 의성군의 한 민가에 전하는 필사본 가사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작자는 대왕대비(大王大妃) 김씨로 안동인이며 순조비(純祖妃)가 되는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이고 제작 연대는 그의 생몰 연대 및 순조비 책비(1802) 및 순조의 승하(1834)를 고려하면 1834년에서 1857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필사본 『金大妃訓文歌(김대비훈문가)』(1863, 김수의(金壽義)의 전사(轉寫))에 산문과 합록되어 있는 가사이다. 민간 전승의 「훈민가」를 대왕대비 순원왕후에 가탁하여 위작한 것으로 작자는 대비를 중심으로 하는 궁중이나 그 주변의 상류 사람들이다. 따라서 제작 연대는 1834년에서 사본 전사 연대인 1863년 사이다. 두 이본 간에 내용상의 큰 차이는 없다. 현재로는 전자의 김대비 친작설을 입증할 만한 다른 자료가 없어 작자를 미상으로 해 둔다. 이 작품은 삼강오륜에 입각하여 백성들을 훈회(訓誨)하되 행동거지에 대해서조차 세세히 언급한 것으로 ‘훈민가’의 좋은 실례가 된다. 한편 이 필사본은 ‘조션국짐비훈민가라’와 같이 ‘김대비 훈민가’ 뿐만 아니라 ‘부인 훈민가’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두 작품을 섞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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