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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선조유필(松江先祖遺筆)
작자 :
정철
구분 :
전적
집정보 :
단행본
松江先祖遺筆은 14편의 편지와 1편의 만사, 그리고 잡문 몇 편, 오언시 한 수와 칠언시 한 수로 구성되어 있다. 14편의 편지 중 12편의 편지는 아들에게 쓴 편지이나, 나머지 두 편의 상대는 글의 내용만을 가지고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글의 내용으로 보아 상당히 가까이 지낸 지인이거나 집안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1편의 만사의 상대 역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글의 내용으로 보아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이고, 거문고에 능하였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松江先祖遺筆에 수록된 잡문 1편은 임진년(1592년) 정월 강계에 위리되어 있었던 때부터 동년 6월 22일 용천에 머물기까지의 기록인데 너무 소략하여 간단한 메모로 추정된다. 다만 그 내용에 강계에 위리되어서도 절요를 열세번이나 읽었다는 기록과 대학을 읽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松江先祖遺筆은 송강 정철이 생전에 썼던 편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 松江集에도 송강 정철의 편지가 몇 편 수록되어 있으나, 특히 松江先祖遺筆은 아들과의 답서가 주를 이루고 있어 송강의 정치외적 인물을 알아보는 좋은 자료가 된다. 서인의 영수로써 정쟁에서 항상 강경한 자세를 취하였던 송강 정철의 가정적 모습을 잘 보여줌으로써 송강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참고가 되는 자료이다. 또한 松江先祖遺筆에는 홍징과의 화답시인 오언시와 칠언시가 실려 있다. 松江先祖遺筆에 실려 있는 편지의 내용을 보면, 아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와 학문에 대한 걱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자식에게 언문에 대한 교육도 시켰음을 알 수 있다. 병자년 12월 20일의 편지를 보면 ‘부가 업이에게 글읽기 빠뜨리지 말라하고, 양이도 글자 연습과 함께 언문 구절 잘 외워 두라고 하여라.’라는 구절이 보인다. 특히 松江先祖遺筆을 보면 송강 정철이 갖은 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자식 역시 건강이 좋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건강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로 건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松江先祖遺筆에는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많아 송강 정철이 양생법에 심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松江先祖遺筆에는 집을 오래 떠나 있었던 정철이 하인의 처리 등을 소상히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齊家에도 항상 마음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松江先祖遺筆>은 활자본이 아니기 때문에 송강 정철의 친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일부는 초서로 되어 있는 松江先祖遺筆은 그 주가 지극히 개인적인 가간서에 불과하지만 송강 정철이 우리 문학사와 정치사에 남긴 커다란 족적으로 인하여, 그의 역사 뒷면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송강집(松江集四)4
작자 :
정철
구분 :
전적
집정보 :
송강집(松江集)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1536~93)의 시문집. 11권 7책. 원집 2권, 속집 2권, 별집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은 1633년(인조 11)경에 아들 홍명(弘溟)이 펴냈다. 1622년에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에 이정구가 쓴 서가 붙어 있고, 장유의 후서(後序), 김상헌의 발문(跋文), 송시열의 중간발문(重刊跋文) 등이 실려 있으며, 권1에 시(詩), 권2에 잡저(雜著)·제문(祭文)·서(序)·소차(疏箚)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1677년(숙종 3)경에 이선이 펴냈으며, 권1에 시, 권2에 잡저·소·계(啓)·제문·서(書) 등이 실려 있다. 연보 2책이 포함된 별집은 1894년(고종 3)에 펴낸 듯하며 이때 원집·속집·별집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권1에 시·부(賦)·묘갈(墓碣)·제문·서(書), 가간서(家間書), 권2에 연보 서(序)·세계도, 연보 상(上), 권3에 연보 하(下), 권4에 사제문(賜祭文)·제문·만장(輓章)·행록(行錄), 권5에 행장(行狀)·시장(諡狀), 권6에 신도비명(神道碑銘)·묘표(墓表)·전(傳), 권7에 변무소(卞誣疏)·서(書)·기술잡록(記述雜錄) 등이 실려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송강집(松江集三)3
작자 :
정철
구분 :
전적
집정보 :
송강집(松江集)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1536~93)의 시문집. 11권 7책. 원집 2권, 속집 2권, 별집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은 1633년(인조 11)경에 아들 홍명(弘溟)이 펴냈다. 1622년에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에 이정구가 쓴 서가 붙어 있고, 장유의 후서(後序), 김상헌의 발문(跋文), 송시열의 중간발문(重刊跋文) 등이 실려 있으며, 권1에 시(詩), 권2에 잡저(雜著)·제문(祭文)·서(序)·소차(疏箚)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1677년(숙종 3)경에 이선이 펴냈으며, 권1에 시, 권2에 잡저·소·계(啓)·제문·서(書) 등이 실려 있다. 연보 2책이 포함된 별집은 1894년(고종 3)에 펴낸 듯하며 이때 원집·속집·별집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권1에 시·부(賦)·묘갈(墓碣)·제문·서(書), 가간서(家間書), 권2에 연보 서(序)·세계도, 연보 상(上), 권3에 연보 하(下), 권4에 사제문(賜祭文)·제문·만장(輓章)·행록(行錄), 권5에 행장(行狀)·시장(諡狀), 권6에 신도비명(神道碑銘)·묘표(墓表)·전(傳), 권7에 변무소(卞誣疏)·서(書)·기술잡록(記述雜錄) 등이 실려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송강집(松江集五)5
작자 :
정철
구분 :
전적
집정보 :
송강집(松江集)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1536~93)의 시문집. 11권 7책. 원집 2권, 속집 2권, 별집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은 1633년(인조 11)경에 아들 홍명(弘溟)이 펴냈다. 1622년에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에 이정구가 쓴 서가 붙어 있고, 장유의 후서(後序), 김상헌의 발문(跋文), 송시열의 중간발문(重刊跋文) 등이 실려 있으며, 권1에 시(詩), 권2에 잡저(雜著)·제문(祭文)·서(序)·소차(疏箚)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1677년(숙종 3)경에 이선이 펴냈으며, 권1에 시, 권2에 잡저·소·계(啓)·제문·서(書) 등이 실려 있다. 연보 2책이 포함된 별집은 1894년(고종 3)에 펴낸 듯하며 이때 원집·속집·별집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권1에 시·부(賦)·묘갈(墓碣)·제문·서(書), 가간서(家間書), 권2에 연보 서(序)·세계도, 연보 상(上), 권3에 연보 하(下), 권4에 사제문(賜祭文)·제문·만장(輓章)·행록(行錄), 권5에 행장(行狀)·시장(諡狀), 권6에 신도비명(神道碑銘)·묘표(墓表)·전(傳), 권7에 변무소(卞誣疏)·서(書)·기술잡록(記述雜錄) 등이 실려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송강집(松江集六)6
작자 :
정철
구분 :
전적
집정보 :
송강집(松江集)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1536~93)의 시문집. 11권 7책. 원집 2권, 속집 2권, 별집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은 1633년(인조 11)경에 아들 홍명(弘溟)이 펴냈다. 1622년에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에 이정구가 쓴 서가 붙어 있고, 장유의 후서(後序), 김상헌의 발문(跋文), 송시열의 중간발문(重刊跋文) 등이 실려 있으며, 권1에 시(詩), 권2에 잡저(雜著)·제문(祭文)·서(序)·소차(疏箚)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1677년(숙종 3)경에 이선이 펴냈으며, 권1에 시, 권2에 잡저·소·계(啓)·제문·서(書) 등이 실려 있다. 연보 2책이 포함된 별집은 1894년(고종 3)에 펴낸 듯하며 이때 원집·속집·별집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권1에 시·부(賦)·묘갈(墓碣)·제문·서(書), 가간서(家間書), 권2에 연보 서(序)·세계도, 연보 상(上), 권3에 연보 하(下), 권4에 사제문(賜祭文)·제문·만장(輓章)·행록(行錄), 권5에 행장(行狀)·시장(諡狀), 권6에 신도비명(神道碑銘)·묘표(墓表)·전(傳), 권7에 변무소(卞誣疏)·서(書)·기술잡록(記述雜錄) 등이 실려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송강집(松江集二)2
작자 :
정철
구분 :
전적
집정보 :
송강집(松江集)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1536~93)의 시문집. 11권 7책. 원집 2권, 속집 2권, 별집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은 1633년(인조 11)경에 아들 홍명(弘溟)이 펴냈다. 1622년에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에 이정구가 쓴 서가 붙어 있고, 장유의 후서(後序), 김상헌의 발문(跋文), 송시열의 중간발문(重刊跋文) 등이 실려 있으며, 권1에 시(詩), 권2에 잡저(雜著)·제문(祭文)·서(序)·소차(疏箚)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1677년(숙종 3)경에 이선이 펴냈으며, 권1에 시, 권2에 잡저·소·계(啓)·제문·서(書) 등이 실려 있다. 연보 2책이 포함된 별집은 1894년(고종 3)에 펴낸 듯하며 이때 원집·속집·별집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권1에 시·부(賦)·묘갈(墓碣)·제문·서(書), 가간서(家間書), 권2에 연보 서(序)·세계도, 연보 상(上), 권3에 연보 하(下), 권4에 사제문(賜祭文)·제문·만장(輓章)·행록(行錄), 권5에 행장(行狀)·시장(諡狀), 권6에 신도비명(神道碑銘)·묘표(墓表)·전(傳), 권7에 변무소(卞誣疏)·서(書)·기술잡록(記述雜錄) 등이 실려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송강집(松江集一)1
작자 :
정철
구분 :
전적
집정보 :
송강집(松江集)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1536~93)의 시문집. 11권 7책. 원집 2권, 속집 2권, 별집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은 1633년(인조 11)경에 아들 홍명(弘溟)이 펴냈다. 1622년에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에 이정구가 쓴 서가 붙어 있고, 장유의 후서(後序), 김상헌의 발문(跋文), 송시열의 중간발문(重刊跋文) 등이 실려 있으며, 권1에 시(詩), 권2에 잡저(雜著)·제문(祭文)·서(序)·소차(疏箚)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1677년(숙종 3)경에 이선이 펴냈으며, 권1에 시, 권2에 잡저·소·계(啓)·제문·서(書) 등이 실려 있다. 연보 2책이 포함된 별집은 1894년(고종 3)에 펴낸 듯하며 이때 원집·속집·별집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권1에 시·부(賦)·묘갈(墓碣)·제문·서(書), 가간서(家間書), 권2에 연보 서(序)·세계도, 연보 상(上), 권3에 연보 하(下), 권4에 사제문(賜祭文)·제문·만장(輓章)·행록(行錄), 권5에 행장(行狀)·시장(諡狀), 권6에 신도비명(神道碑銘)·묘표(墓表)·전(傳), 권7에 변무소(卞誣疏)·서(書)·기술잡록(記述雜錄) 등이 실려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송강집(松江集七)7
작자 :
정철
구분 :
전적
집정보 :
송강집(松江集)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1536~93)의 시문집. 11권 7책. 원집 2권, 속집 2권, 별집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은 1633년(인조 11)경에 아들 홍명(弘溟)이 펴냈다. 1622년에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에 이정구가 쓴 서가 붙어 있고, 장유의 후서(後序), 김상헌의 발문(跋文), 송시열의 중간발문(重刊跋文) 등이 실려 있으며, 권1에 시(詩), 권2에 잡저(雜著)·제문(祭文)·서(序)·소차(疏箚)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1677년(숙종 3)경에 이선이 펴냈으며, 권1에 시, 권2에 잡저·소·계(啓)·제문·서(書) 등이 실려 있다. 연보 2책이 포함된 별집은 1894년(고종 3)에 펴낸 듯하며 이때 원집·속집·별집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 권1에 시·부(賦)·묘갈(墓碣)·제문·서(書), 가간서(家間書), 권2에 연보 서(序)·세계도, 연보 상(上), 권3에 연보 하(下), 권4에 사제문(賜祭文)·제문·만장(輓章)·행록(行錄), 권5에 행장(行狀)·시장(諡狀), 권6에 신도비명(神道碑銘)·묘표(墓表)·전(傳), 권7에 변무소(卞誣疏)·서(書)·기술잡록(記述雜錄) 등이 실려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음빙행기(飮冰行記)
작자 :
정홍명
구분 :
전적
집정보 :
단행본
飮冰行記는 정홍명이 숭정 2년 1629년 음력 3월 25일부터 윤 4월 25일까지 선위사가 되어 일본국 대마도 사신 석현방과 부관 편지광을 접대하였던 과정을 일기체로 서술한 수필이다. 이 글에는 정홍명이 선위사가 되어 일본국 대마도 사신을 만나게 되기까지의 여정과 그날 그날의 심회가 잘 표현되어 있는 기행수필의 백미이다. 飮冰行記에는 정홍명이 선위사로 부름 받고 한양을 떠나 부산까지의 여정과 일본국 대마도 사신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한양에 오르는 여정이 소상히 소개되어 있다. 이 글은 하루의 일과와 그날의 특별한 경험, 그리고 날씨까지 기록되어 있다. 특히 선위사로서 일본국 대마도 사신을 접대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하여 임진왜란 후 일본국 사신의 조선에 대한 인식도 엿볼 수 있다. 飮冰行記의 다음 구절을 보면 일본국 사신의 태도를 알 수 있다. 29일 개임 현방이 또 답서를 보내왔는데 말뜻이 불손하다. 그것은 반종이 너무 적다는 것에 화를 낸 것이고 또 상경을 어렵게 여기는 뜻도 알았기 때문이다. 부득이 통역인을 시켜 관에 들어가 발행한 시기를 분명히 일러주고 또 인부와 말의 숫자도 정해 줬는데 가지가지로 까탈을 잡고 허갈을 백가지로 하여 일이 난처함이 많았다. 그래서 치계를 하여 사유를 갖추어 여쭙고 조정의 재처를 기다렸으며 현방에게는 답서를 보내지 않았다. 飮冰行記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일본국 사신의 거만함과 정홍명이 선위사로서 사신 접대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 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이 세밀한 심리 묘사와 미려한 표현을 빌어 문학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또한 飮冰行記는 극히 개인적인 수필에 불과하지만 일본국 대마도 사신 석현방과 부관 편지광이 재차 조선에 길을 빌리러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임란 후 변한 동북아 정세를 살필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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