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역
어떤 길손이 성산(星山)에 머물면서
서하당(棲霞堂) 식영정(息影亭) 주인(主人)아 내 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여겨
적막 산중에 들고아니 나오신가
송근(松根)을 다시 쓸고 대 평상 자리보아
잠시간  올라앉아 어떤가 다시보니
하늘가의 뜬 구름이 서석(瑞石)을 집을삼아
나는 듯 드는 모습 주인과 어떠한고
창계(滄溪)의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렀으니
직녀의 좋은비단 그누가 베어내어
잇는듯 펼치는 듯 요란도 하는구나
산중에 책력(冊曆)없어 사시(四時)를 모르더니
눈아래 펼친 경치 철철이 나타나니
듣거니 보거니 일마다 선계로다
매화창(梅花窓) 아침볕의 향기에 잠을깨니
산늙은이 해야할일 아주없지 아니하다
울밑의 양지편에 오이씨 뿌려두고
매거니 돋우거니 비온김에 손질하니
청문(靑門)의 고사(古事)를 지금도 있다하리
서둘러 짚신 신고 대지팡이 흩어 짚으니
도화(桃花)핀 시냇길이 방초주(防草州)에 이었구나
맑게 닦은 거울속 절로 그린 돌병풍
그림자 벗을삼고 새와 함께 걸어가니
도원(桃園)이 여기로다 무릉(武陵)은 어디멘고
남풍(南風)이 잠깐불어 녹음(綠陰)을 헤쳐내니
때를 아는 꾀꾀리는 어디에서 왔었던고
희황(羲皇) 베개위의 풋잠을 얼핏 깨니
공중(空中)젖은 난간(欄干) 물 위에 떠 있구나
삼베옷 걸쳐입고 갈건(葛巾)을 기울여 쓰고

구부락 비기락 보는 것이 고기로다
하룻밤 비 기운에 홍백련(紅白蓮)이 섞어피니
바람기 없어서 온 산이 향기롭다
염계(濂溪)를 마주보아 태극(太極)을 묻는 듯
태을(太乙) 진인(眞人)이 옥자(玉字)를 헤쳤는 듯
노자암(鸕鶿巖)바라보며  자미탄(紫薇灘) 곁에 두고
장송(長松)을 차일(遮日) 삼아 돌 길에 앉아 보니
인간세상 유월 달이 여기는 삼추(三秋)로다
맑은 강에 떴는오리 백사장에 옮겨앉아
백구(白鷗)를 벗을 삼고 잠깰줄 모르느니
무심하고 한가함이 주인과 어떠한고
오동나무 사이달이 사경(四更)에 돋아오니
천암(千巖) 만학(萬壑)이 낮인들 그러할까
호주(湖州)의 수정궁(水晶宮)을 그누가 옮겨왔나
은하(銀河)수 건너 뛰어 광한전(廣寒殿)에 올라 간듯
짝 맞은 늙은 솔일랑 낚시터에 세워두고
그 아래 배를띄워 가는대로 던져 두니
홍료화(紅蓼花) 백빈주(白蘋州)어느 사이 지났는지
환벽당(環碧堂) 용(龍)의 못이 배앞에 닿았어라
맑은강 푸른 풀밭 소 먹이는 아이들이
흥취에 겨워서 피리를 빗겨부니
물아래 잠긴 용이 잠 깨어 일어날듯
내 기운에 나온 학이 제 깃을 벌리고
반공에 솟아 뜰듯
소선(蘇仙)의 적벽(赤壁)은 가을 칠월 좋다는데
팔월 십오야(十五夜)를 모드 어찌 내세운가
비단 구름 다걷히고 물결이 잔잔할제
하늘에 돋은 달이 솔위에 올랐으니
잡으려다 물에빠진 이태백이 요란쿠나
공산(空山)에 쌓인 잎을 삭풍이 거둬 불어

떼구름 거느리고 눈조차 몰아오니
조물주는 호사(好事)하여 옥으로 꽃을지어
만수(萬樹) 천림(千林)을 꾸며도 내었구나
앞 여울 가려 얼어 외나무다리 걸쳤구나
막대멘 늙은중이 어느절로 간단말인가
산 늙은이 이부귀를 남에게 자랑마오
아름다운 은세계를 찾을이 있을세라
산중에 벗이없어 서책을 쌓아두고
만고(萬古)의 인물들을 거슬러 헤아리니
성현은 물론이요 호걸도 많고많다
하늘이 만드실 때 곧 무심 할까마는
어찌한 시운(時運)이 일고 기울고 하였는고
모를일도 많거니와 애달음도 그지없다
기산(箕山)의늙은 고불(古佛)귀는 어찌 씻었던가
표주박을 떨친후에 지조(志操)가 더욱높다
사람마음 얼굴같아 볼수록 새롭거늘
세상사는 구름이라 험하기도 험하구나
엊그제 빚은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잡거니 밀거니 싫도록 기울이니
마음의 맺힌시름적으나마 풀려진다
거문고 줄에얹어 풍입송(風入松 ) 이로구나
손인지 주인인지 다잊어 버려무나
창공의 떴는 학이 이고을의 신선이라
휘영청 달빛아래 행여 아니 만나잔가
손님이여 주인에게 이르기를 그대긴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