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역
무등산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떨치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없이 넓은 들에 무슨 생각 하느라고
일곱 굽이 한데 멈춰 무더기무더기 벌여 놓은 듯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든 늙은용이
선잠을 막깨어 머리를 얹혔으며
넓은 바위 위에
송죽을 헤치고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 탄 청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 벌렸는 듯
옥천산 용천산 내리는 물이
정자앞 넓은들에 올올히 펴지는듯
넓거든 길지 말거나 푸르거든 희지 말거나
쌍룡이 뒤트는 듯 긴 비단을 펼쳐 놓은듯
어디로 가느라고 무슨일이 바빠서
달리는 듯 따르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
물을 따른 모래톱은 눈처럼 펼쳤거든
어지러운 기러기떼 무엇과 정 주느라고
얹었다 내렸다 모였다 흩어졌다
갈대꽃을 사이두고 울면서 서로 쫓는고
넓은길 밖이요 긴 하늘 아래에
두르고 꽂힌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실물인가
높은듯 낮은듯 끊는듯 잇는듯
숨거니 보이거니 가거니 머물거니
어지러운 가운데 이름난 양하여
하늘도 두려워 않고 우뚝이 섰는모습
추월산 머리짓고
용구산 봉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였거든

원근의 푸른언덕 머문 짓도 많고많다
흰 구름 뿌연 안개 푸른 것은 아지랑이라
많은 바위 골짜기를 제집으로 삼아두고
나면서 들면서 아양도 떠는구나
오르거니 내리거니
장공에 떠나거니 광야로 건너거니
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
저녁 햇볕 섞이어서 세우조차 뿌리도다
남여를 재촉해 타고 솔아래 굽은길로
오며 가며 하는때에
녹양에 우는꾀꾀리 교태겨워 하는구나
나무사이 우거져서 녹음이 짙은 때에
백척 난간에서 긴졸음을 내어퍼니
수면의 양풍이야 그칠줄 모르도다
된서리 걷힌후에 산빛이 비단이로다
황운은 또어찌 넓은들에 퍼졌는고
어부피리 흥에겨워 달을따라 부는구나
초목이 다진후에 강산이 묻혔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빙설로 꾸며내니
경궁 요대와 옥해 은산이
눈 아래 펼쳤구나
천지도 풍성하야 간곳마다 경치로다
인간세상 떠나와도 내몸이 겨를없다
이것도 보려하고 저것도 들으려고
바람도 쏘이려고 달도 맞으려하니
밤이랑 언제줍고 고기일랑 언제 낚을꼬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낙화는 누가 쓸것인가
아침 시간부족하다가 저녁이라 싫을쏘냐
오늘이 부족한데 내일이라 넉넉하랴
이 산에 앉아보도 저산에 걸어보니

번거로운 마음에도 버릴 일이 전혀없다
쉴사이 없거든 길이나 전하리라
다만 한 청려장이 다 무디어 가는구나
술이 익었거니 벗이야 없겠는가
부르며 타며 켜며 흔들대며
온갖 소리로 취흥을 재촉하니
근심이라 있으며 시름이라 붙었으랴
누우락 앉으락 굽으락 젖히락
읊조리며 파람 불며 마음놓고 놀거니
세상도 넓고넓고 세월은 한가하다
희황 시절 몰랐더니 지금이 그때로다
신선이 어떻던가 이봄이 곧 신선이구나
강산 풍월 거느리고 내평생을 다누리면
악양루 위에놀던 이태백이 살아와도
호탕한 정회야 이보다 더할쏘냐
이몸이 이러하옴도 또한 임금의 은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