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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정한 Ⅰ(사미인곡에서)
乾건坤곤이 閉폐塞야
사은 니와
瀟쇼湘상 南남畔반도
玉옥樓누 高고處쳐야
陽양春츈을 부처내여
茅모簷쳠 비쵠11)
白雪셜이 빗친제
새도 긋쳐잇다
치오미 이러커든
더옥닐너 므리
님겨신 쏘이고져
玉옥樓누의 올리고져
(「송강가사」 성주본에서)
겨울의 정한 Ⅰ(사미인곡에서)
乾건坤곤이 閉폐塞야
사은 니와
瀟쇼湘상 南남畔반도
玉옥樓누 高고處쳐야
陽양春츈을 부처내여
茅모簷쳠 비쵠11)
白雪셜이 빗친제
새도 긋쳐잇다
치오미 이러커든
더옥닐너 므리
님겨신 쏘이고져
玉옥樓누의 올리고져
(「송강가사」 성주본에서)
현 대 문초 록
겨울의 정한 Ⅰ(사미인곡에서)
乾건坤곤1)이 閉폐塞2)야
사은 니와4)
瀟쇼湘상6) 南남畔반7)도
玉옥樓누8) 高고處쳐야
陽양春츈10)을 부처내여
茅모簷쳠 비쵠
白雪셜이 빗친제3)
새5)도 긋쳐잇다
치오미 이러커든
더옥닐너9) 므리
님겨신 쏘이고져
玉옥樓누의 올리고져
(「송강가사」 성주본에서)
춘하추동 네 계절 중 소설小雪 .대설大雪, 소한小寒 .대한大寒
이 드는 때는 겨울이다. 겨울은 눈이 내리고 추위가 휘몰아치는 계
절이므로 눈(설雪)과 추위(한寒)로 말미암은 설한풍雪寒風의 걱정이
없을 수 없다. 위에 든 동사冬詞의 허두에서‘온 천지 다 폐색되어
백설로 한 빛’이라 함은 이 같은 겨울을 맞이하면서 느껴지는 예민
한 계절감을 시적 표현으로 옮긴 것이다. 때문에‘폐색閉塞’은 이에
쓰인 한자의 자전식 의미에 치중하여 단순히‘닫아 막는 것’, 또는
‘닫혀 막히는 것’이라고 풀이하기보다‘겨울에 천지가 얼어붙어 생
기가 막힘’을 뜻한 말로 해석된다. 소설이든 대설이든 간에 겨울에
하얀 백설이 내리면 가사의 사설 그대로 온 천지는 한 빛이 되고, 흔
히 매서운 설풍도 겹치기 때문에 바깥출입에 위험을 주는 설정雪程
의 걱정, 또는 거기에 덮칠 설한이나 빙설 기후氷雪氣候의 우려까
지 자아낼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겨울의 흰눈은 또 은빛 일색으로 온 천지를 장식하는 아
름다움을 이루기도 하고, 신묘한 빙설로 우리를 감탄케 하는 낭만의
흥취마저 일게 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시인들이 느끼는 눈
에 대한 정감과 상상의 표출은 다양하다.
천국의 아들이여, 경쾌한 족속이여,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김진섭의<백설부>에서)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 황막한 벌판을 희게 덮어 다오.
(오일도의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에서)
눈이 쌔고 쌘 답답한 이 겨울도/금잔디 속잎 나고 종달새 지저귀
는/그저 그 봄인 양으로 들썩이는 이 마음.
(이병기의 <눈>에서)
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세상일을 생각해 본다. 수수한 백설, 때묻
지 않은 눈송이가 날리는 것을 볼 때, 문득 우리는 착한 이웃들과
아이들의 운명을 느끼게 된다.
(이어령의 <차 한 잔의 사상>에서)
위에 든 글들은 모두가 김진섭이 <백설부>의 또 한 대목에서 말
한‘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환호성을 소리 높이 지르는 느낌
이 난다’고 한 정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정철 역시 송림松林
에 내린 눈을 보고 감탄하여 시적 감흥을 억제하지 못하고 시조체로
형상화한 글이 있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 내어 님 계신 데 보내고저.
님께서 보시온 후에 녹아진들 어떠리.
위의 시조 또한 눈으로 꾸며지는 설경의 아름다움에 환성을 금하
지 못한 설화雪花 찬미의 노래이다. 그러면서 그 아름다운 설화 한
가지를 꺾어다가 님에게 보내고자 하는 소원의 표명은 곧 평소 지녔
던 간절한 연군의 표명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겨울의 계절감으로
연유된 이 시조의 주제는 <사미인곡>의 경우와 서로 비슷하다고 하
겠다. 그러나, 같은 동절의 노래라 할지라도 작시의 동기와 문예적 수
사기법은 서로 다르다. <사미인곡> 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고 애절한
처지에서 표출한 글이다. 작시의 배경으로 설화와 같은 화려한 설경
이 아니라 겨울의 추위와 눈으로 정적만을 느끼게 하는 시적 분위기
의 묘사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나들이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날
아다니는 새마저 그쳐 있다’고 함이 이를 의미한다. 마치 중국 당나라
의 유종원 柳宗元이 지은 <강설江雪> 에서‘천산 조비절 千山鳥飛絶
만경 인종멸萬經人蹤滅 ;주위의 모든 산엔 나는 새마저 끊겨 있고,
나다니는 모든 길은 사람 발자취조차 볼 수 없다’고 한 시의 분위기
를 그대로 연상케 한다. 아울러 동사冬詞의 서정은 이렇게 이어진다.
“소상瀟湘의 남반南畔(남쪽 땅)도 추위가 이러한데/옥루玉樓 높
은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리/양춘陽春(봄볕)을 부쳐내어 님 계신
데 보내리라/모첨茅簷(초가 지붕의 처마)에 비친 해를 옥루에 올리
고 싶어라.”
중국의 호남성 동정호의 남쪽을 가리키는‘소상 남반’은 정철이
낙남하여 은거하고 있던 전남의 창평(지금의 담양)을 비유한 말이다.
그리고,‘옥루’는 임금이 계시는 서울의 궁궐을 염두한 표현이다. 추
운 겨울에 비록 초가에서 지내는 몸이지만 북쪽에 위치한 서울, 그
것도 바람타는 높은 옥루에 계시는 임금의 안위가 염려되어 봄볕이
라도 불러다가, 심지어 자시의 초가 지붕에 비추는 따뜻한 햇볕이라
도 보내고 싶어하는 심정은 말로 다 형용하기 어려운 지극한 충성심
의 발로요, 간곡한 연군지정으로 해석된다.
특히‘양춘을 부쳐 보내는 마음’에는 깊은 의미가 함의含意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양춘’은 봄철의 따뜻하고 맑은 기운을 뜻하
는‘양춘 화기陽春和氣’의 준말이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에 해동의
희망과 기쁨을 안겨드리고 싶은 충정의 표시임은 물론이요, 여기에
는 작자가 평소 실천하고자 하던 경국 제민經國濟民의 숭고한 뜻이
담겨 있음을 찾아낼 수 있다.
정철은 <사미인곡>을 제작하기 이전에 이미 중국의 초사楚辭,
특히 <사미인思美人>이나, 널리 알려진 고악부古樂府의 <장가행
長歌行> 등의 내용을 익히 해득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후자에
는“양춘이 도와 은혜를 끼치니, 만물은 아름다운 빛을 낸다”는 내
용의 글이 나온다. 정철의 가사에서 말한‘양춘’은 이 명구의 뜻깊은
의미망을 상상하고 정치적 이념까지 담아내기 위한 시적 조사措辭
로 해석된다. 이처럼 그의 가사는 구구 절절이 평범한 서술이 아니
므로 의미 깊은 송강문학의 내면 세계를 재삼 실감할 수 있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느껴지는 예민한 계절감을 시적 표현으로 옮긴 것이다. 이 시를 박행보가 그림으로 형상화하였다.
어휘 풀이
1)건곤 : 乾坤. 하늘과 땅. 천지天地.
2)폐 : 페색패색. 닫아 막는 것. 닫혀 막히는 것. 겨울에 천지가 얼어붙어 생기가 막히는 것.
3)빗친제 : 한가지로 같은 빛인 때에.
4)사은 니와 : 사람은커녕.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5)새 : 날아다니는 새(조鳥)
6)쇼상 : 소상소상. 중국의 호남성 동정호의 남쪽에 있는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합류하는 곳의 지명. 삼상三湘의 하나임.
7)남반 : 南畔. 남쪽의 밭둑. 남쪽 땅.
8)옥누 : 옥루玉樓. 아름다운 누각. 백옥루白玉樓의 준말.
9)더옥닐너 : 더욱 말하여.
10)양츈 : 양춘陽春. 따뜻한 봄철, 또는 음력 정월의 별칭.
11)모쳠 비쵠 : 모첨(茅簷. 초가 지붕의 처마) 비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