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좋은 추(秋) 팔월에 금강 구경 한번 하세
문 앞에 한 걸음 나와 서니 천리 강산이 지척(咫尺)1이라
죽장망혜(竹杖芒鞋)2 단표자(單瓢子)3로 삼삼오오(三三五五)4 작반(作伴)5하여
봉래(蓬萊)6 천리 뻗은 길로 관동(關東) 산천 들어갈 제
김화김성(金化金城) 얼른 지나 단발령(斷髮嶺)7을 내려 서서
금강산을 바라보니 어찌 보기가 늦었던고
일대(一代) 천하(天下) 명산(名山)이요 시방세계(十方世界) 불국(佛國)이라
장안사(長安寺)8로 들어가니 좌우(左右)에 서 있는 로령신(路靈神)9은
사람보고 축객(逐客)10하네 운주문(雲住門)에서 헐각(歇脚)11하고
만천교(萬川橋)를 건너 서서 만수정(萬水亭) 범왕루(梵王樓)의
산천경개(山川景槪)12 바라보니 산은 첩첩(疊疊)13 천봉(千峰)이요
물은 잔잔(潺潺) 벽계(碧溪)14로다
물학단풍 구월(九月) 추(秋)는 번화(繁華)15함을 자랑고
금풍탕서 은환청은 추흥(秋興)을 돋우는구나
대웅보전(大雄寶殿)16 들어가니 이층(二層) 감전(紺殿)17 금법당(金法堂)에
삼세여래(三世如來)18 육광보살(六光菩薩)19 원만상호(圓滿相好) 거룩하다
<금강산유람가>는 작자 및 제작연대 미상의 기행가사 작품이다. 두루마리에 순국문 표기로 <금강산유람가>와 <남졍녹> 두 편의 가사가 필사되어 있으며, 원전의 크기는 670*21cm이다.
이 가사의 내용은 화자가 번잡하고 무상(無常)한 세상일에서 잠시 벗어나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여행한 여정과 감회를 읊은 것이다. 다른 금강산 기행가사와는 달리 여정에 있어서 금강산 일대의 사찰과 암자들에 중점을 두어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금강산유람가>는 1935년에 간행된 불교의례집 『석문의범』의 증보판 부록에 수록된 <금강산유산록(金剛山遊山錄)>의 이본으로 추정된다. <금강산유산록(金剛山遊山錄)>과 이 작품을 비교해 보면 표기법상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금강산유산록(金剛山遊山錄)>과 대조했을 때, <금강산유람가>에는 관동팔경을 여행한 내용이 상당 부분 빠져있고, 여정의 서술 순서도 두세 곳 뒤바뀌어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작품 말미에는 “어와 세상 사람들아 이 말씀을 들어보소~”로 시작하는 부기(附記)가 있는데, “이 가사 금강산에 단체로 간 단장(團長)이 지었으니 내 갔던 자취로 베껴 왔으니 심심하거든 보아라”라는 구절로 미루어 볼 때, 이 작품은 부녀자들이 금강산을 단체로 유람한 뒤 그 여행을 인솔했던 단장이 지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서 여성이 창작한 가사 특유의 표현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확신할 수는 없다.
어휘 풀이
1)지척(咫尺) : 아주 가까운 거리.
2)죽장망혜(竹杖芒鞋) : 대지팡이와 짚신이란 뜻으로, 먼 길을 떠날 때의 아주 간편한 차림새를 이르는 말.
3)단표자(單瓢子) : 한 개의 표주박.
4)삼삼오오(三三五五) : 서너 사람 또는 대여섯 사람이 떼를 지어 다니거나 무슨 일을 함. 또는 그런 모양.
5)작반(作伴) : 짝을 이룸. 동행자나 동무로 삼음.
6)봉래(蓬萊) : 금강산의 별칭. 여름의 금강산을 달리 이르는 말.
7)단발령(斷髮嶺) : 강원도 김화군과 회양군 사이에 있는 고개. 신라의 왕자 혹은 고려의 태조가 이 고개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음. 높이는 834미터.
8)장안사(長安寺) : 강원도 금강산에 있는 큰 절. 신라 법흥왕 원년(514)에 진표(眞表)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성종 때 크게 확장되었음.
9)로령신(路靈神) : 길 가에 서 있는 영신(靈神). 영신(靈神)은 영검이 있는 신을 뜻함.
10)축객(逐客) : 손님을 푸대접하여 쫓아냄.
11)헐각(歇脚) : 잠시 멈추어 다리를 쉼.
12)산천경개(山川景槪) : 자연의 경치.
13)첩첩(疊疊) : 여러 겹으로 겹쳐 있는 모양.
14)벽계(碧溪) : 물이 맑아 푸른빛이 도는 시내.
15)번화(繁華) : 번성하고 화려함.
16)대웅보전(大雄寶殿) : 본존불상(本尊佛像)을 모신 법당(法堂). 사찰에서 가장 큰 법당.
17)감전(紺殿) : 감색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절'을 이르는 말.
18)삼세여래(三世如來) : 삼세여래(三世如來)
19)육광보살(六光菩薩) : 육광보살(六光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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