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 변화함은 측량하여 말하는 것인가.
애련(哀憐)히 눈을 들어 <원근(遠近)을 바라보니>
용산(龍山)51에 늦은 경치는 창울(悵鬱)52함이 심사(心思) 같고,
마탄(馬灘)53의 넓은 물은 탕양(蕩(樣)54함이 회포(懷抱) 같다.
보통문(普通門) 송객정(送客亭)55은 이별 아까워 서러워마라.
<초패왕의 장한 뜻도 죽기로 이별이 서러워
옥장(玉帳) 비가(悲歌) 높이 불러 눈물을 지었으나
오강(烏江) 풍우(風雨) 이별에도 울었단 말은 못 들었네.
천지는 몇몇 해며 이별은 누구누구? >56
세상 이별 남여 중에 날 같은 이 또 있는가.
수로문(水路門)에 보이는 배는 행하는 곳 어디냐?
만단(萬端) 술회(述懷) 실은 후의 천 리 약수(弱水)57 건너가서
우리 님 계신 곳에 수이수이58 풀고지고59
성(城) 위에 늦은 경(景)은 견디고는 못 보리라.
금란(金襴)60 단우(丹愚)61로 의관(衣冠)을 지여들이고 <싶구나>.
바람결에 우는 종경(鐘磬)62 묻노니 어디 절인고?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은 작자와 연대는 알 수 없는 조선시대 고소설 <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에 삽입된 가사(歌辭)이다. 고소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평양성(平壤城) 김진사의 딸 채봉(彩鳳)은 후원으로 봄나들이를 나온다. 그 모습에 반한 전 선천부사(宣川府使)의 아들 장필성(張弼成)은 그녀가 떨어뜨린 손수건에 사랑하는 시를 써서 보내고 채봉도 화답시를 보내면서 마침내 둘은 약혼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벼슬에 눈이 어두운 채봉의 아버지 김 진사는 딸을 허 판서의 첩으로 보내려고 마음을 먹는다. 채봉은 평양으로 도망을 나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허 판사가 김 진사를 하옥시키자 채봉은 아버지를 구하고자 송이(松伊)라는 기생이 된다. 서로 주고받은 시를 확인한 채봉과 필성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평양감사 이보국(李輔國)이 채봉을 탐내어 데려가자 둘은 다시 이별을 한다. 필성은 자진하여 감사의 이방으로 변신한다. 채봉은 밤마다 필성을 그리며 <추풍감별곡>을 읊는데 이 사연을 듣게 된 감사는 채봉을 놓아 결국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남녀 주인공의 신분을 뛰어 넘는 파란 많은 사랑의 과정을 통해 당시 불합리한 사회 질서와 부패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정확한 표현법과 독창적인 구성으로 인해 고소설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삽입된 채봉의 노래 <추풍감별곡>은 일명 <감별곡(感別曲)>이라 하여 서도소리로 개작하여 불렸다. 조선 말기에 유행했던 이 가사는 순결하고 진질한 사랑을 주제로 한 절창으로 평가 받아 규방에서 아녀자들 사이에 대단히 유행했다. 따라서 필사본이 많은데, 필사하는 과정에서 필사자의 의도와 심사에 따라 원전과 다르게 필사된 부분도 있고 오류도 종종 발견된다.
이 필사본은 필사자나 소유자를 알 수 없고, 보관 과정에서 제목과 앞부분이 찢겨 나갔다. 18.5×385㎝의 두루마리 한자에다 1행에 4음보 2구를 종서(縱書)하여 모두 280행으로 기록하고 콩기름을 먹였다. 중간에 빠진 부분도 있고, 원전과는 다르게 표기된 부분도 있다. 원전에는 없는 결사(結辭)를 첨가하는 것으로 보아 가사(歌辭) 문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어휘 풀이
51)용산(龍山) : 평양 대성산. 용산만취(龍山晩翠)는 평양(平壤) 팔경(八景)의 하나.
52)창울(悵鬱) : 몹시 서운하고 울적하다.
53)마탄(馬灘) : 대동강 여울. 마탄춘장(馬灘春張)은 평양 팔경의 하나.
54)탕양(蕩(樣) : 물결이 넘실거리며 움직임.
55)송객정(送客亭) : 대동강 지류. 보통송객(普通送客)은 평양 팔경의 하나.
56)<> : 원문에 빠진 부분. 김기동 · 전규태 편,
57)약수(弱水) : 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 속의 강.
58)수이수이 : 쉽게쉽게
59)풀고지고 : 풀고 또 풀고
60)금란(金襴) : 비단(緋緞)의 한 가지. 황금 실을 섞어 호화찬란하게 짜고 명주실로 봉황이나 꽃무늬를 냄.
61)단우(丹愚) : 자신의 성의(誠意)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62)종경(鐘磬) : 종과 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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